'선물환 암초'에 흔들리는 조선업계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서명훈 기자 2008.10.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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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헤지의 역습, 이익내고도 자본잠식

-환율 급등에 대규모 평가손실 '증시퇴출 위기'
-호황일수록 부채비율은 급등 '이상한 회계기준'
-회계방식 바꾸면 3년 정도 소급 새로 작성 부담


"키코(KIKO)보다 선물환이 무섭다?" 환율 폭등에 신음하는 기업들을 돕기 위한 금융당국의 회계처리 보완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선물환 거래 평가손, 키코(KIKO·Knock-In Knock-Out) 등 통화옵션상품 투자 손실 등이 커 자본잠식 위기로 내몰리는 기업들이 구제 대상이다.

◇선물환 피해 어떻길래=수출기업은 결제대금을 달러로 받는다. 통상 계약과 동시에 대금을 받는 구조가 아니어서 선물환 거래를 한다. 계약 후 제품을 넘기는 기간까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조선업체의 경우 선박 계약 후 건조까지 2~3년이 걸린다. 이 기간 중 환율변동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장차 받을 달러가격을 현재 환율로 미리 정해놓은 선물 거래를 한다. 이를테면 달러당 1000원에 달러를 미리 팔아 놓았는 데 환율이 1200원으로 뛰면 달러당 200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그만큼이 평가손실로 잡힌다.

삼성중공업 (9,440원 ▲90 +0.96%) 대우조선 (31,000원 ▲450 +1.47%)해양 STX (7,920원 ▲120 +1.54%) 등 조선업체들은 지난해까지 수년간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자 환위험 헤지를 위해 시중은행에 올 상반기까지 지속적으로 선물환을 매도했다. 그런데 최근 환율이 급등하자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현행 회계기준상 평가손실은 자본금 항목에 반영된다. 이렇게 되면 장부상 자본금을 까먹을 수밖에 없고 일부 업체는 영업이익률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수조원의 적자는 물론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상장 규정상 자본잠식기업은 즉시 퇴출대상이다.


◇호황에 부채비율 폭등=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6월 307%에서 올해 6월말 현재 1573%로 급등했다. 삼성중공업은 386%에서 1397%로, STX는 326%에서 1478%까지 치솟았다. 업황이 좋아 선주로부터 받은 막대한 선수금이 부채로 인정된 탓이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수주협상은 물론 은행권 차입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선물환에 가입했는데 일시적으로 자본이 줄고 그만큼 부채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조선업체뿐 아니라 다른 수출기업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반 기업들은 부채비율이 높으면 문제가 되지만 조선업은 호황일수록 부채비율이 급등할 수밖에 없는 회계구조를 갖고 있다"며 "선수금 급증과 환율 급등이 부채비율 급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 구제 논란=금융당국은 선물환 거래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공정가액 위험회피회계'를 적용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조선업체 등은 주로 현금흐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선물환 거래로 평가손실이 발생하면 바로 자본계정에 반영되고 자기자본이 감소한다. 반대로 평가이익이 생기면 자기자본이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최근 몇 년간 환율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수출기업 중 상당수가 현금흐름 방식을 선호했다.
 
반대로 공정가액 방식은 수출대금과 선물환 거래금액이 동일하면 (완전 헤지 혹은 확정계약) 수출대금은 자산으로, 선물환은 부채로 인식된다. 자산과 부채가 상계되기 때문에 장부상 '착시효과'는 크게 줄어든다.

한영회계법인 관계자는 "공정가액 방식 자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어 큰 무리는 없다"면서 "하지만 재무제표 비교를 위해 3년 정도까지는 소급해 공정가액 방식으로 재무제표를 새로 작성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가액 방식을 채택하려면 기업이 완전 헤지 혹은 확정계약 임을 증명해야 한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공정가액 방식을 채택한 경우 회계감리시 '분식회계'로 처리된다.

키코 등 통화옵션상품 거래로 피해를 입은 기업은 '중소기업 회계처리 특례'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에서 특례 적용 대상 기업을 확대한 기준서를 제정하면 된다. 특례 적용을 받으면 미실현 평가손실은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고 주석으로만 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장사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만큼 특례 적용은 비상장사로 제한된다. 키코 가입기업의 85%가 비상장사여서 대부분 혜택이 돌아가지만 나머지 15%는 구제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 방식 역시 집단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특례 적용으로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법정 다툼이 불가피하다.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특례를 확대했지만 법원에서 이를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당국은 나머지 15%(상장사)의 경우 전액 자본잠식이 확인되더라도 퇴출시키지 않기로 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실질 심사를 벌이고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상장폐지를 유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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