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끝인가 시작인가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반준환 기자, 오수현 기자 2008.10.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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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5인의 '긴급좌담회'

편집자주 세계경제가 '21세기형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 선진국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진원지인 이번 위기의 규모나 파장은 예측불허다. 각국 정부가 금리인하에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 등 정책공조에 나서면서 금융시장도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도한 우려 못지않게 낙관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잖다. 머니투데이 주최 '대한민국 금융혁신 대상' 심사차 최근 한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경제주체들의 고통분담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금융규제 완화 후퇴 안돼, 감독강화와 절충점 필요(최운열 부총장)
-금융권 유동성 적극 지원, 중앙·국책銀 역할 확대를(김용환 위원)
-기업들 심리적 패닉상태, 실물경제로 전이 막아야(김연호 부대표)
-통화옵션·선물환 거래시 적절한 기준 조속 정립을(김필규 위원)
-외환위기 전철 밟지 않게 자산가격 하락 우선 대처(구본성 위원)

미국발 금융위기
▶최운열 서강대 부총장(이하 최 부총장)=국내 금융시장이 해외변수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잠재력 있는 기업들도 흑자도산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9월 위기설' 때처럼 한국경제 상황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필규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이하 김 연구위원)=외환위기를 앞서 경험했기 때문에 (국내)시장이 보다 민감한 것같습니다. 증시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상장기업 전체적으로 43%에 달했는데 최근 25%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가 25%라는 점에서 '시장이탈'보다 '정상화' 과정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가 조기에 도입된 덕에 주택대출 부실에 따른 은행권의 부실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입니다.

▶김용환 금융위 상임위원(김 상임위원)=정부가 LTV나 DTI 등의 건전성 규제를 소신있게 유지한 게 효과를 보고 있다고 봅니다. 금리상승으로 서민들의 대출이자 부담은 올라갔지만 전체적으로 연체율 등에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김연호 딜로이트 안진회계 부대표(김 부대표)=같은 의견입니다. 다만 기업들이 지금 일종의 패닉상태에 빠져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심리가 흔들리면 결국 실물경제에도 타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금융권 부실로 연결되고 소비자들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습니다.
머니투데이가 주최한 '대한민국 금융혁신대상' 심사차 모인 구본성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필규 증권연구원 연구위원, 김연호 딜로이트안진회계 부대표, 최운열 서강대 부총장, 김용환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왼쪽부터)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br>
/사진=홍봉진 기자 머니투데이가 주최한 '대한민국 금융혁신대상' 심사차 모인 구본성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필규 증권연구원 연구위원, 김연호 딜로이트안진회계 부대표, 최운열 서강대 부총장, 김용환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왼쪽부터)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미국발 금융위기 해법
▶최 부총장=시장의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본래 기능을 상실했을 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구제금융 대책을 내놓고 있고 아시아권에서도 정책적 공조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론도 재차 부상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제한돼 있는데,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 상임위원=이번 금융위기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지속될지 진단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가계·기업·정부가 합심해서 버텨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합니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구 선임연구위원)=국내기업들의 펀더멘털에 변화가 없어도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이 계속되면 영향이 올 것입니다. 내년에는 건설업계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영여건도 더욱 어려워질텐데 은행 건전성이 유지될 수 있는지 우려스럽습니다. 10년 전 외환위기 경험을 토대로 보면 경제성장률 둔화, 자산가격 하락에 우선 대처해야 합니다. 정부와 민간이 배려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공동생존을 모색해야 합니다.


▶김 상임위원=우리도 중앙은행 및 국책은행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예컨대 한국은행이 금융권에 유동성 지원을 보다 강화하면 시장분위기 개선에 큰 힘이 될 것같습니다. 산업은행도 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방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시장 침체에 대해서는 경제주체별로 고통을 인내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입니다. 반면 증권이나 자산운용 등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보는 시각이 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굳이 사업을 확대하지 않더라도 해외 투자은행(IB)들이 보유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김 연구위원=현 시점에서 지나치게 위기론을 내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시장기능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건 필요합니다. 주가·환율·금리 등 자금순환을 대표하는 지표에서 일종의 '쏠림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피해가 커진 것도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을 컨트롤하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최 부총장=금융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시행에서는 탄력성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금융위기가 대두되면서 한국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금융규제 완화가 후퇴하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기준과 비교할 때 아직 금융완화의 첫 단계에 있습니다. 금융시장이 불안하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규제를 대학생 수준으로 비유한다면 우리는 유치원생인데, 여건이 불안하다고 규제완화를 하지 말자는 것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되 감독은 강화하는 절충선을 찾아야 합니다. 규제와 감독을 혼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키코(KIKO) 문제
▶김 상임위원=은행들이 키코 피해업체에 대출을 연장해주고 정부도 나서서 지원책을 강구하면서 일정부분 해결 가능성이 보입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시장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키코 피해가 중소기업의 경영위기에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겁니다. 금융권을 통해 파악해보니 키코에 가입한 업체는 총 1115곳이었고, 이 가운데 중소기업은 418곳이었습니다. 문제는 키코가 헤지목적이 아닌 투기목적으로 활용된 것들입니다. 키코 가입 기업들의 평균 헤지비율은 35.1%인데 중소기업 68곳은 700~800%였습니다. 수출입거래에서 환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키코로 돈을 벌어보려 했다는 것입니다. 은행들을 키코사태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건 온당치 않아 보입니다. 다만 정상적인 헤지거래를 한 중소기업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 부대표=키코 판매시 일부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업 회계기준에서는 키코거래를 기본적으로 투기목적으로 분류합니다. 그만큼 위험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이 키코거래 약관을 충분히 설명했다지만 기업들이 리스크 가능성을 100% 숙지하지 못해서 피해를 키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선물환 평가손
▶최 부총장=이제 관심은 키코보다 수출업체들이 헤지를 위해 매도한 선물환의 평가손실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선박수출을 염두에 두고 10억달러 규모의 선물환을 원/달러 환율 1000원에 매도하고, 이후 환율이 1300원대로 올랐다면 장부에는 3000억원의 평가손실을 기재해야 합니다. 수출대금을 받으면 장부손실이 해소되지만 그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멀쩡한 기업도 적자기업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 연구위원=평소에는 통화옵션이나 선물환 거래에 문제가 없지만 지금처럼 환율이 급변동할 때는 심각한 이슈가 됩니다. 통화옵션이나 선물환 거래시 계약기간에 평균확률로 평가할지, 아니면 회기말 환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적절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키코문제도 이같은 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 부대표=선물환 매도와 관련해 장부평가에 문제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수익을 거뒀음에도 장부에는 적자를 기재해야 하는 건 불합리합니다. 그러나 국제 회계기준에 공통된 부분이라 수정이 어려울 듯 합니다. 당국에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환거래 평가손실 때문에 자본이 잠식되고 상장업체들이 대거 상장폐지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경영인들은 지금 패닉상태입니다.

▶김 상임위원=환율변동에 따라 실제 경영성적과 장부평가에 불일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특히 금융시장의 혼란이 계속되면서 기업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물환을 매도하는 경우 환율변동에 따른 평가손실은 자본잠식 요건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가능할 걸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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