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타지 않으면 익사, 녹색성장은 시대 파도"

대담=권성희 정경부장, 정리=황국상기자, 사진=송희진 기자 2008.10.1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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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강국 초대석]정래권 외교통상부 기후변화대사

"저탄소 녹색성장은 대세입니다. 파도가 밀려오면 올라타야지, 빠지면 익사할 뿐입니다. 파도를 비난하면 안됩니다. 서핑(Surfing)을 하느냐, 익사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린 거니까요."

정래권 외교통상부 기후변화대사는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을 요구한다"며 산업계와 시민사회 등 민간부문이 능동적으로 대응해줄 것을 당부했다.



↑ 정래권 기후변화대사 ⓒ송희진기자↑ 정래권 기후변화대사 ⓒ송희진기자


국제 기후대응체제 협상을 전담하기 위해 올 5월 신설된 기후변화대사직에 취임한 정 대사는 지난 2005년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 ESCAP) 환경·지속가능발전국장으로 근무할 당시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의 균형적 조화'를 뜻하는 '녹색성장(Green Growth)' 개념을 처음 입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 대사에게 우리 사회가 녹색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와 향후 기후변화 국제협상에 대한 전망에 대해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비전으로 내세운 이유가 뭘까요
▶경제환경이 예전에 비해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1975년 이후 30년간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7.5배 성장하는 동안 에너지 소비량은 7.4배 늘었습니다.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량 증가율이 거의 정비례한 셈이에요.

이는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했을 때의 패러다임입니다. 이미 우린 배럴당 150달러 이상의 고유가를 경험하면서, 우리 경제가 경제적·생태적 취약성이 얼마나 큰 지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취약성이 동시에 악순환을 일으켰던 거죠.

경제성장률과 에너지 소비량의 연결고리를 깨야 한다는 데서 '저탄소 녹색성장'이 시작했습니다. '값싼 화석연료 패러다임'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 녹색성장을 위해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할까요
▶현재 우리 정부는 녹색기술 개발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을 바꿔야 합니다.

기술개발 외에 '교통 등 사회 인프라(기반) 개선' '시민의식 변화 등 소비패턴 변화' '탄소세 도입 등 세제개혁'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정부가 기술개발을 강조하는 건 시민에게 부담을 적게 주니까 당장 추진하기 쉬워서죠. 시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시민들이 '소비자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소비자 책임'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 정래권 기후변화대사 ⓒ송희진기자↑ 정래권 기후변화대사 ⓒ송희진기자
- 결국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비용 대비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가장 높은 부문이 가정·상업·교통입니다. 산업 부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체 석유소비량의 52%가 산업계로 흘러가는 건 맞습니다만, 이 중 에너지로 쓰이는 부분은 11%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41%는 원료로 쓰이는 거예요.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있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많이 만들면 뭐합니까. 시민들이 자가용만 타려는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나라 교통부문 온실가스량은 안 줄어듭니다.

기름값이나 전기, 수돗물이 싸니까 사람들이 낭비합니다. 가격을 올려서 사람들이 덜 쓰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도심에 자동차를 가져오는 사람은 그만큼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감수할 만큼 의식수준이 높아져야 하는 게 관건이죠.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추가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생태효율성을 높인 성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 우리나라의 녹색성장 비전에 대한 해외의 반향은 어떻습니까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제-환경을 아우르는 새 패러다임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죠. 저탄소 녹색성장을 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요.

스위스처럼 관광산업을 주축으로 한 나라를 제외하면, 나라 전체가 성장하면서 '녹색(환경)'을 표방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다른 경제성장 모델과 달리 녹색성장은 그 어디서도 모방할 곳이 없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나라가 갑자기 녹색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술과 재원이 충분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델이 세계에 수출되면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일 것입니다.



- 혹시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저탄소형 산업구조로 변화를 염두에 두셨던 건가요
▶국제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압력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기후변화 때문에 산업구조를 바꾼 나라는 없습니다.

산업구조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 자동적으로 변하는 것이지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인위적으로 산업구조를 바꾼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선도역할을 자임하는 영국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었던 건 조선·광업·자동차 회사들이 경쟁력 약화로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서비스업 중심으로 구조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구조를 바꾼 건 아니었습니다.



↑ 정래권 기후변화대사 ⓒ송희진기자↑ 정래권 기후변화대사 ⓒ송희진기자
- 우리나라가 일본·EU처럼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교토의정서 부속서1에 올라 있는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이산화탄소를 뿜어내서 오늘날 기후변화를 초래한 책임이 있는 나라들의 명단입니다.

EU 회원국이나 일본이 과거 식민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대포와 총, 군함을 만들고 전쟁하는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지금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왜 우리나라가 그 나라들과 똑같은 의무를 져야 합니까? 우리는 그들과 같은 역사적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국력에 맞는 감축노력에는 나설 겁니다. 이 대통령이 이미 지난 7월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내년 중 한국의 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속서1 국가가 아닌 나라 중에 감축목표를 세우겠다고 한 건 우리나라가 처음입니다.

'우리나라가 부속서1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으로 얻은 탄소배출권(CER)을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매년 1435만톤의 CER을 얻어 매년 2억8200만유로(약 4627억원)을 법니다. 그러나 부속서1에 포함되는 즉시 우리나라는 수출국에서 수입국이 돼버립니다.

- 기후협상에서 우리나라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가장 강한 기후정책을 펴는 EU가 우리나라의 선언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EU는 지난 8월 가나 아크라에서 열린 회의에서 △개도국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저감하고 △저감한 만큼의 온실가스량을 국제 기준에 따라 측정·검증해서 △이를 국제 탄소시장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우리나라의 제안을 지지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 부속서1 국가들보다 역사적 책임이 덜한 나라들끼리 별도의 리스트(명부)를 만들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공동행동에 나설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미 싱가포르와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가 여기에 동참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브라질, 멕시코 등 교섭력 있는 개도국을 끌어들인다면 우리나라의 입지가 더 튼튼해질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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