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덫에 사로잡힌 GE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8.10.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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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는 세계경제 바로미터…GE 회복이 곧 경제회복 의미

미국을 대표하는 가치 투자자 워런 버핏은 지난 9월 30일 아침 잠을 취하던 6시 55분경 긴급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 통화는 정확히 7시 30분에 끝났다.

버핏은 곧이어 잠옷을 입은 채로 거실에서 방문객을 맞이해 제너럴일렉트릭(GE)에 30억달러의 버크셔해서웨이 자금을 투입해 우선주를 매입하는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GE로부터 연간 10%의 배당금을 받고 3년 후 10%의 프리미엄을 얹어 팔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또 버핏은 보통주 30억달러 어치를 주당 22.25달러에 향후 5년간 언제든 매입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받았다.

이날은 GE의 130년여 역사상 가장 극정인 날로 기억될 만하다. GE 대변인은 아침 9시 14분 언론사들에게 의회의 금융구제방안의 빠른 합의를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오전 11시에는 도이치뱅크가 GE의 올해 순익 전망을 크게 삭감했다. 이 소식에 GE의 주가는 즉시 9% 하락했다. 그리고 11시 23분 GE캐피털 채권에 대한 크레딧디폴트스왑(CDS)은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지구상에서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부여받고 있는 6개 기업중 하나인 GE가 정크 등급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흉흉한 관측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가는 폭락했다.

그러던 오후 1시44분 마침내 GE는 버핏으로부터 30억달러를 유치한 것을 포함, 총 120억달러의 자금 조달에 나설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GE가 성공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버핏의 발언도 포함됐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GE 주가는 하락폭을 접고 곧바로 반등으로 돌아섰다.

이날은 버핏에게 큰 수익 기회를 안겨준 날이었지만 GE에게 있어서는 치욕의 날이었다. 6일전 제프리 이멜트 GE 최고경영자(CEO)는 애널리스트들이 신주 발행 가능성을 질문했을 때 "우리는 신주 발행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자금 사정이 매우 좋다"고 밝혔다.


아무도 GE가 절실히 자본을 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GE의 신규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은 놀라운 소식이었다.

GE는 10일(현지시간)에도 12% 급감한 3분기 순익을 발표했다. 이는 금융서비스 부문의 부진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GE는 실적 발표와 함께 순익 감소세가 지속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GE는 올해 200억달러의 순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는 지난해 보다 10% 가량 적어진 수준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GE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직후 금융위기를 맞이해 금융 자회사인 GE 캐피털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짙은 부실 그림자에 사로 잡혔다고 전했다.

GE 캐피털은 지난 수년간 모기업인 GE의 순익에 가장 큰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전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GE캐피털은 한순간에 GE의 가장 큰 부채 및 부실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GE 전체가 회생을 위해 GE캐피털 부실로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GE는 가전사업을 시작 모태로 의료, 항공기 엔진, 발전설비, 에너지,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왔다. 그러나 전통적인 엔진, 설비 등 사업의 성장세가 둔화되자 전략적으로 금융 서비스 육성에 나섰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GE 순익의 절반이 GE캐피털에서 나올 정도였다. GE캐피털은 고객들이 GE의 발전터빈, 제트엔진, 윈드밀, 기관차 등의 고가 제품을 매입하는 것을 저금리를 통한 대출로 도와주며 GE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유발해왔다.

GE캐피털은 'AAA' 신용등급을 가진 모기업을 통해 싸게 자본을 빌려올 수 있었으며, GE가 좋은 실적을 유지하는 데에도 기여해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터지자 이런 선순환은 갑자기 악순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GE캐피털이 세계에서 가장 큰 상업용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가 증폭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실제로 GE캐피털이 신용위기에 타격을 입고 GE의 실적이 악화되자 투자자들의 우려는 심화됐다. 시장에서 GE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것이란 소문이 돌았고 결국 이러한 소문은 GE의 채권을 기피해 GE의 유동성을 막았다. 시장에서는 GE의 기업어음(CP)마저 기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GE는 자금조달을 통한 위기해법에 나서게 된 것이다. GE가 이번 위기에서 빠져나오더라도 결국 명성에 큰 타격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GE가 전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GE의 위기 극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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