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커들이 보너스 못받아 집값 떨어져요"

런던(영국)=권화순 기자 2008.10.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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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먹구름 낀' 런던 금융가…샌드위치 점심에 실직 우려 '흉흉'

"씨티(City) 지역 뱅커들이 보너스를 못 받아 부동산값이 떨어지고 있다."

요즘 영국 금융시장에서 떠돌고 있는 루머(?)다. 씨티는 뱅크(Bank)역을 중심으로 영국은행(BOE), 왕립 증권거래소, 로이즈 등 주요 은행 본점과 지점이 몰려있는 금융가로 뉴욕 월스트리트에 필적한다. 이 지역 뱅커들은 영국에서도 대표적인 고액 연봉자로 꼽힌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되자 이 곳에서도 보너스는 날라갔다고 한다. 이들이 여윳돈이 없어 부동산 투자를 못하자 집값이 떨어졌다는 논리다. 9개월간 영국 집값이 하락세라고 하니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런던 금융가의 '먹구름'=500억 파운드의 구제금융과 영란은행의 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발표가 난 8일. 런던의 날씨는 모처럼 맑았지만 금융가 '먹구름'은 여전했다.

런던 뱅크역 부근에서 모처럼의 햇살을 만끽하러 나온 크리스틴 브루스는 "요즘 씨티의 점심 시간이 조용해졌다"고 전한다. 몸과 마음이 바빠진 뱅커들이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서다.



달라진 풍경은 또 있다. 명품가게에 손님이 '뚝' 끊긴 것. 명품 가게로 탈바꿈한 왕립 증권거래소에 뱅커들이 찾지 않고 있다. 대신 이 건물 앞 웰링턴 장군 동상 아랜 카메라 기자와 리포터들이 아침부터 진을 친다.

영란은행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가장 놓을 자리여서다. 이날 오전 영국 정부가 500억파운드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영란은행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로이터의 한 기자는 "구제금융이 과연 효과가 있을 진 두고봐야 알 것"이라는 신중한 모습이다.
↑구제금융 발표 날 영국은행과 왕립 증권거래소 사이에 기자들↑구제금융 발표 날 영국은행과 왕립 증권거래소 사이에 기자들


씨티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는 '제2의 금융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분위기도 밝진 않다. 이 지역엔 바클레이즈, HSBC, BoA 등이 자리 잡았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리먼브러더스의 영국 본부가 있었다.

100파운드짜리 사내용 식권 잔액을 쓰려고 구매 매점이 붐볐고, 짐을 꾸려 나가는 직원과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베이 경매에서 '리먼 티셔츠'가 고가에 넘어가는 후일담을 남겼지만, 현재는 흔적없이 사라졌다.


HSBC 본사 로비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 케이씨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불안하다"면서 "친구들은 리먼 직원처럼 일자리를 잃을까봐 걱정한다"며 흉흉한 분위기를 전한다.

◇"미국 찍고 이미 유럽으로"=구제금융과 금리인하에도 영국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날 영국 런던 증시의 FTSE100지수는 전일에 비해 238.53포인트(5.18%) 급락한 4366.69로 장을 마감했다.

바클레이즈가 15% 폭락하고 로이즈 TSB는 9.5% 밀렸다. HBOS와 RBS는 불과 며칠 새 반토막 났다. 리보 금리는 5.375%로 전날에 비해 1.4375%포인트나 폭등했다. 리먼 사태 직후인 9월 16일 이래 최고 수준이다.

JP모건 런던 법인의 데이비트 웰스 마케팅 이사는 "정말 힘든 기간"이라고 푸념한다. 향후 전망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면서 "기자들에겐 일생일대의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뼈있는 농을 건넸다.

미국 시장보다 유럽 시장이 더 큰 위기란 게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회사 직원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영국의 분위기는 훨씬 심각하다"면서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금융사들이 정부만 쳐다보며 손 벌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한다.

해외 자산을 매각해 외화유동성을 확보하라는 한국 정부의 정책엔 "시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잘라 말한다. 스위스를 제외하곤 유럽에서도 장기채 발행은 이미 오래전 일. 하루짜리 콜로 연명하기는 국내 시장이나 마찬가지란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외환위기땐 보유 채권을 팔아 외화를 마련했지만 지금은 런던 시장도 망가져 아예 투자자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금융 시장 불안으로 마음을 분주한데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함을 토로한다.
↑'제2의 금융가' 카나리 워프에 위치한 HSBC 본사 로비↑'제2의 금융가' 카나리 워프에 위치한 HSBC 본사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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