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2008.10.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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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햇살은 따사롭고, 봄꽃은 화사했건만, 자고 일어나면 자살하는 대학생으로 사회는 뒤숭숭했다.

명지대생 강경대 군이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분신과 투신자살로 12명의 젊은 생명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스러지는 이른바 '분신 정국'이 불거졌던 것이다.

지금은 생명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지하씨는 당시 조선일보에 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에서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1998년 봄에도 햇살은 따사롭고, 봄꽃은 화려했으나 온 국민은 IMF 체제에 짓눌려 있었다. 대한민국은 '자살 공화국'이었다. 투자에 실패해서, 직장에서 쫓겨나서, 사업이 망해서 등등의 이유로 선택해서는 안될 선택을 한 이땅의 가장들이 잇따랐다.

너무도 어려웠던 그때, 나라를 살리겠다며 장롱에 꽁꽁 숨겨놓은 금을 앞다퉈 내놓는 감동의 스토리가 물기마저 바싹 말라 스산한 마음에 한줄기 희망과 용기을 드리움에도 목숨을 끊는 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에 의한 사망률은 10만명 당 21.5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1.2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 2001년 15.1명에 비해 5.6명이나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OECD 평균 자살률은 2001년 10만명 당 11.9명에서 2006년 11.2명으로 줄었다.

최진실 씨의 자살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최 씨의 자살은 이를 모방한 제2, 제3의 자살을 낳고 있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장채원씨는 친구에게 '최진실 심정 나도 알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주에서는 지난 6일밤에서 7일 아침까지 하룻밤 사이에 20∼30대 여성 3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조자살 또는 모방자살을 의미하는 '베르테르 효과'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정부에 따르면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살한 지난 2003년 8월 남성 자살자는 모두 855명으로 이전달인 7월 보다 118명이 더 늘어났다.

지난 2005년 2월 탤런트 이은주씨가 자살한 직후인 3월에는 여성 자살자 수가 2월 당시 240명에서 2배 가까이 증가한 462명이나 됐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해 고 유니씨와 고 정다빈씨, 최근 고 안재환씨가 자살한 직후에도 이어졌다.



안된 얘기지만 최 씨는 적어도 남기고 간 두 자녀에게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큰 죄를 지었다. 가서는 안되는 길에 발을 들여놓아 아이들에게 평생 지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기었다.

세계적 지성 노신(魯迅)은 "많은 사람이 가고 있다면 그 길이 최상이다"라고 말했다. 너무도 힘겨운 현실에 비틀대는 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큰 길로 나오라.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발길을 돌려라. 바위처럼 꿈쩍 않는 투혼과, 살아서 먼 훗날을 꿈꾸는 희망과 이성을 실현하라.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경기침체로 갈수록 살기는 힘들어지고 있다. 경기침체의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



수시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자살 고위험군'은 물론 IMF 당시에 경험했듯이 평범한 사람들도 삶에 지쳐 불연듯 자살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어느 때보다 서로에 대한 각별한 관찰이 필요한 때다. 너나없이 따스함이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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