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받친 건설업계,부도를 기다리는 까닭

머니투데이 원정호 기자 2008.10.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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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톡톡]

"사람들이 알만한 업체가 쓰러져야 하나.."

주택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에 처한 건설업계가 부도를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물론 자기 회사가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한계에 봉착해 회생 불가능한 기업이라면 빨리 쓰러지는 게 모든 건설업계를 구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악에 받친 듯한 이런 믿음은 크게 2가지에서 비롯된다.



우선 업계가 처한 현재의 위기를 대외에 알리는 데 부도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그동안 미분양 가구수를 기준으로 정부에 어려움을 하소연 해왔다. 7월말 기준 지자체가 집계한 전국의 미분양주택은 사상 최고인 16만595가구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별 효과가 없다고 본다. 피부에 안 와 닿는데다 건설사마다 정확한 미분양 가구수를 숨기고 있어서다.

건설업계가 그동안 폭리를 취하다가 이윤이 줄어들어 엄살을 부린다고 치부하는 시각이 정부 일각에서 남아있을 정도다. 이런 인식 아래에서 눈치보기식으로 내놓는 건설경기 대책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실제 A건설사 임원은 이달초 국토해양부와의 간담회에서 "대책이 나올 때마다 아파트 계약가구수가 되레 줄었다"고 지적했다. 6.11 지방미분양 해소대책이 발표되기 전 이 회사의 하루 평균 계약가구 수는 16가구였으나 발표 이후 4~6가구로 급감했다.


업계는 지금처럼 구매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금융권의 자금 경색이 지속되면 연말쯤 10위권내 기업도 넘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 전에 일부 업체가 쓰러지고 그 파급 효과를 매개로 정부가 수요 진작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주는 게 최악 사태를 면하는 길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우방 청구 등 중견 건설사들이 줄줄이 부도나면서 정부가 98년 분양가 규제를 풀고 자율화하는 등 강력한 건설 부양 대책을 폈다"면서 "지금의 어려움도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한켠에선 공급 과잉상태인 동종 업계가 시장논리에 따라 자율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

무모하게 차입해 사업을 벌인 기업 중 갚을 능력이 없으면 시장의 결정을 받아야 한다는 게 건설업계의 시각이다. 여기에는 부동산 호황을 타고 자격 미달의 업체가 우후죽순 생긴 데 대한 위기의식이 깔렸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토목업은 정부의 실적 평가를 받지만 주택업은 누구나 깃발을 꽂고 분양할 수 있어 지금과 같은 미분양 사태를 유도한 측면이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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