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재무담당자의 하소연

더벨 김은정 기자 2008.10.0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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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은행 "예금 인출 불가"'…적격등급 회사채만 투자 '규정'

이 기사는 10월06일(11:1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기사에 이니셜이 똑같은 회사 소식이 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괜한 오해로 은행들이 또다시 전화 세례를 퍼붓지 않을까 해서요.”



중견 건설사 재무담당을 맡고 있는 A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직함 그대로 회사의 재무 상태를 관리해야 하는 그이지만 최근에는 사실상 두 손 놓고 있는 상태다. 건설사 유동성 위기설이 나오더니 이제는 미국발 금융쇼크까지 가세해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직접 조달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길이 막힌 데다 이제는 현금성 자산조차 마음대로 유동화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갑과 을의 관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은행들의 태도 때문에 예금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은행채 금리가 급등하고 단기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시장이 좀 안정된 뒤 찾아가라"는 권고 아닌 권고를 내놓고 있기 때문. 10억원 이상 예금은 내주지 않는 은행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기업을 상대하는 은행들의 입장이야 이해는 가지만 그나만 예금까지 틀어쥐면서 기업들은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예금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출이나 신디케이트론을 통한 조달이 쉬울 리 없다. 건설업 등 민감 업종에 대한 대출 심사는 한층 수위가 높아졌다. 실오라기 같은 단서 하나까지 꼬투리를 잡아 심사 통과를 무산시킨다.


A씨는 최근 만기 도래한 공모사채 차환 발행에 실패해 자체 보유 자금으로 상환하기도 했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채권 발행 시장에서 증권사들은 총액 인수뿐 아니라 공동 인수에도 손사래를 친다. 금리도 문제지만 투자자 모집 자체가 힘든 까닭이다.

특히 비우량 신용등급에 해당하는 기업의 경우, 아예 시장에서 소화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만기를 줄이거나 가산금리를 높여도 소용이 없다.

평소 유대가 돈독했던 B특수은행까지 지난해 말 신용등급 BBB+ 이상 회사채에만 투자하도록 내부 규정을 개정하면서 인수에 난색을 표했다.

그나마 지방 미분양 물량이 없는 편이라 다행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이미 건설업계는 공존공생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느 한 기업이라도 부도설에 휩싸이면 같이 위험해진다는 판단에서다.

올해는 그래도 무사히 넘어갈 것 같은데 내년 경기 예측이 안돼 A씨의 고민이 더욱 크다. 한달 뒤면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에 들어가야 하지만 과연 정상적인 수주 및 투자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회사 경영을 위해서는 수주와 분양을 늘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직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게 상책이라고 설명하는 A씨에게 이 글조차 시름을 더해주는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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