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장관, 은행장 직접 소집 배경은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10.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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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투입으로 명분 생겨, 실물경제 위기감도 팽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이례적으로 시중 은행장들을 직접 소집해 은행들의 외환유동성 확보 노력을 강하게 주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정부 장관이 은행장들을 불러모은 것은 현 정부들어 처음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뤄진 정부조직 개편으로 과거 재정경제부 시절 금융정책국이 금융위원회로 넘어가면서 재정부는 은행권과 맞상대할 일이 사실상 없어졌다.



'산업은행 메가뱅크론'을 놓고 재정부와 금융위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듯한 모습이 표출되고 금융위도 국내 금융정책에 재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꺼리면서 강 장관은 국내 금융정책과 관련, 조심스런 행보를 이어왔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핵폭탄'이 국내 금융권을 강타, 외화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사정이 급변했다. 재정부가 외환보유액 50억달러를 수출입은행을 통해 은행권에 직접 지원, 중소기업의 외화유동성 부족을 해갈키로 함에 따라 강 장관은 은행권에 개입할 명분을 얻었다.



강 장관이 이날 은행장들을 소집한 데는 은행권에 대한 유동성 직접 지원에 따른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강 장관이 이날 “도덕적 해이가 있는 은행에 대해서는 벌점(페널티) 금리 부과를 통해 엄격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들은 최근 달러 기근 현상이 심해지면서 신규 외화대출은 물론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도 꺼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정부가 공급하는 달러를 기업에 대출하지 않고 은행 창고에 쌓아두는 ‘달러 사재기’에 나설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외화유동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은행권 자구책 강구도 강조했다. 강 장관은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들은 외화증권 등 해외자산을 조기 매각하고 대기업들이 해외 외국은행에 맡겨둔 외화예금을 국내로 들여와 국내은행에 예치하도록 은행장들이 발 벗고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 지원만 바라지 말고 은행 스스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주문이다. 강 장관은 취임 초 중소기업에 키코를 판매하는 은행에 대해 ‘S기꾼(Speculator, 투기꾼)’이라고 지칭하는 등 은행권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았다.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홍수’를 맞은 상황에서 은행이 중소기업의 ‘우산’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우산’을 뺏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도 읽힌다.

'MB노믹스'의 총사령관격인 강 장관 입장에서는 외환유동성 부족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흑자 기업이 줄도산하는 등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은행권에 대한 강 장관의 입김은 당분간 계속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로 강 장관은 이날 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은행들이 기업들의 매입외환 규모를 축소하면서 선물환에 이어서 외국환 거래까지 막힐 위기감이 팽배한 시점에서 (은행장 간담회를 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재정부 관계자는 "위기 상황에서 앞으로 은행권의 외환관리도 강 장관이 직접 챙기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이어서 강 장관의 개입 폭과 강도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제에 외환 관련 정책에 관해서는 재정부의 역할과 위상을 확실히 세워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심각한 위기 확산 국면에서 금융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강 장관이 전면에 나선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강 장관은 이날 국감에서 경제부총리 부활 주장과 관련, "경제부총리 제도는 과거 개발연대에는 효율적이었고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하고 있는데, 또 다시 위기 때에는 필요한지 판단을 해봐야 한다고 본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이에 따라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외환유동성 불안 사태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금융위보다는 재정부가 은행권에 '시어머니'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이날 간담회도 강 장관이 주연이었다면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조연 역할에 머물렀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실장은 "현 단계에서 재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조치로 보인다"면서 "다만 펀더멘털을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단기처방에 그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목표를 시장에 전달해줄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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