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코비아, 웰스파고와 '새살림'..내막은?

뉴욕=김준형 특파원 2008.10.0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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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와 '혼인신고'안해 위약금 없어..'구제안'통과가 결정 계기

미국 최대 은행 씨티그룹이 4위 은행 웰스파고에 뒤통수를 맞았다. 유례를 찾기 힘든 계약번복 사태로 인해 '다 삼켰던' 와코비아 은행을 토해내야 할 처지가 됐다.
사상 초유의 위기가 낳은 긴박한 금융시장 상황이 이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웰스 파고, 1주일만에 "새 신랑 품으로..."



웰스파고는 3일(현지시간) 와코비아를 151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웰스파고의 와코비아 인수가격은 151억달러. 와코비아 1주당 0.1991주의 웰스파고 주식이 쥐어진다. 이는 전날 마감 가격 기준으로 주당 7달러 수준이며 전날 마감가에 79% 프리미엄을 더한 것이다.

와코비아 주가는 이날 뉴욕증시에서 88.5% 폭등한 6.21달러로 마감, 단숨에 인수 가격에 육박했다.



로버트 스틸 와코비아 회장(CEO)은 보도자료를 통해 "웰스파고와의 합병은 와코비아가 정부의 지원없이 통합된 회사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코바체비치 웰스파고 회장도 컨퍼런스 콜을 통해 "합병은행은 웰스 파고의 이름을 사용할 것"이라며 "웰스파고는 합병을 통해 보다 나은 조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웰스파고는 100억달러를 투입, 와코비아의 자산과 부채를 떠안고,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00억달러 규모의 신주발행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인수조건은 지난달 29일 와코비아의 은행사업부만 따로 떼내 21억6000만달러에 사들이기로 한 씨티그룹과의 계약에 비해 월등히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 씨티그룹 "물에서 건져 놓으니..."

불과 1주일전 와코비아 인수를 발표했던 씨티그룹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씨티측은 공식 발표 직전까지도 웰스파고와 와코비아의 합병 결정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그룹은 인수 합병 발표 직후 와코비아와 웰스파고에 협상중지를 요청했다.
씨티측은 "두 회사의 합병 계약은 씨티와 와코비아가 맺은 배타적 계약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이다.

특히 와코비아의 예금인출사태에 직면한 미 연방보험공사(FDIC)의 중재로 와코비아와 '번개결혼(shotgun marriage)'했던 씨티로서는 배신감이 더 클수 밖에 없다.

더구나 씨티측에 와코비아 인수 이후 발생하는 손실이 420억달러를 넘을 경우 이를 보증해 주기로 했던 예금보험공사(FDIC)마저 웰스 파고의 발표 이후 "어떤 계약이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검토하겠다"며 한발짝 물러서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부실금융기관 손실보전에 쓰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FDIC로서는 세금부담 위험을 줄여줄 수 있는 웰스 파고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게 현실이다.

씨티그룹은 "이에 대해 와코비아 합병후 투입하기로 한 자금을 포함하면 웰스파고보다 자사와의 계약이 납세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 씨티, '합병 계약서' 안썼다가...구제법안 통과, 결정적 계기

와코비아의 스틸 회장은 컨퍼런스콜에서 "씨티와의 계약에 따른 논란은 '적절한 방법'으로 처리할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와코비아가 불과 1주일만에 '새 신랑'을 찾아 나서고도 법적인 문제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은 '혼인신고', 즉 두 회사 합병계약이 최종 완결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파기시 위약금 계약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씨티는 완전히 공중분해된 회사를 인수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최종 계약을 미뤄왔고, FDIC등 감독당국 역시 시장의 충격을 의식, '어정쩡한 상태'로 와코비아를 씨티측에 넘긴 것이다. 원매자도 없고 회생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당시로서는 씨티와 와코비아의 계약이 (적어도 와코비아측에 의해)파기될 가능성은 없었던게 사실이다.

반면 오랫동안 와코비아에 군침을 흘렸으면서도 비용부담때문에 씨티에 와코비아를 넘겨줬던 웰스 파고로서는 새로운 '당근'이 생겼다. 국세청(IRS)이 부실 금융회사 인수시 세금감면 혜택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구제법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구제법안 수정안이 3일 하원을 통과할 것으로 확실시 되자 웰스 파고는 씨티가 계약을 확실히 하기 전에 와코비아를 확 낚아 챈 것이다.

주당 1달러라는 치욕적인 가격에 울며 겨자먹기로 씨티측에 팔려갔던 와코비아로서는 웰스 파고의 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씨티측이 소송을 통해 웰스 파고와 와코비아의 계약 무효화를 시도하더라도 국민부담을 늘리고 시장 혼선을 키우는 쪽에 법원이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다는게 월가의 관측이다. 더구나 씨티의 손에는 도장 찍힌 계약서도 없는 상태이다.

◇ 웰스 파고, 전국 영업망 시너지

웰스파고는 와코비아에 이어 미국 5위 규모의 은행이면서도 주로 영업망이 서부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한계를 지녀왔다.

이번 합병을 통해 39개 주에 걸쳐 1만761개 지점을 확보, 동부와 남부 지역의 영업망을 크게 넓힐수 있다는게 가장 큰 시너지 효과로 지적되고 있다.
부실자산 상각을 포함, 합병에 들어가는 총 비용 740억달러의 값어치를 한다는게 웰스파고의 판단이다.

합병사의 자산규모는 1조4200억달러, 예금은 7800억달러 규모로 씨티, 뱅크 오브 아메리카, J.P모간 체이스과 경쟁해볼 만한 입지를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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