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를 다시 생각한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 소장 2008.10.13 13:07
글자크기

[머니위크]청계광장

어느 날 제자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스승에게 물었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진짜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승이 답했다. “그건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이다.” 그러자 제자가 다시 물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스승의 답이 걸작이다.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남자친구는 이집트 태생이다. 그런 그녀가 스카치위스키에 취한 벨기에 운전사가 모는 독일 차를 타고, 프랑스 지하도에서 사고를 당했다. 일본제 오토바이를 탄 이탈리아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려다. 이런 것이 세계화가 아니고 뭐겠는가?”



세계화에 관한 미국인들의 우스갯소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농담에는 세계화에 관한 진실이 담겨 있다. 세계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전돼 우리 생활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점이 그 중 하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세계화를 통해 비극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 각국 사람들은 전 같았으면 앓지 않아도 될 고통을 동시에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 두가지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중국발(發) 멜라민 분유 파문을 보자. 중국의 몇몇 분유회사가 단백질 함량을 높이려고 멜라민이란 치명적 화합물질을 쓴 것이 발단이었다. 전 같았으면 이 일은 중국에 국한된 일로 전 세계인의 비웃음을 사는 것으로 끝날 문제였다. 지금은 어떤가. 전 세계 30개국 이상에 문제가 된 분유가 수출된 것이 확인됐다. 현재까지 정확한 피해자 수조차 집계되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타날지는 추정조차 힘들 정도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전 세계가 중국의 값싼 저질 제품에 얼마나 의존해왔는지가 확인됐다.



미국발 금융 위기 역시 금융 세계화의 결과로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이런 사안은 미국의 문제로 간주됐다. 지금은 다르다. 지난해 사건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판 파생금융상품이 위기의 진원지였다. 투자은행들은 모기지(mortgageㆍ장기 주택담보대출)를 기반으로 한 상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에 팔았다. 그런데 상품의 기초가 되는 모기지가 부실화되자 마치 연쇄 반응을 수반한 핵폭발처럼 금융 위기가 각국으로 수출됐다. 지금은 위기가 파생상품의 영역조차 벗어났다. 미국의 금융 위기가 악화되는 기미를 보이기만 하면 세계 각국 증시에서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일이 일종의 공식처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 세계화가 급진전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선진국 자본은 자신들의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초기 금융 세계화는 자본이 필요한 신흥시장에 자본이 흘러들어가는 메카니즘으로 비쳐졌다. 돈을 굴려서 불릴 곳을 찾던 서구 금융기관들로서도 신천지를 찾았다. 금융 세계화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동구와 남미 외채 문제가 불거졌다.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재정위기도 잇달았다. 2000년 들어서는 아예 세계 자본의 공급처이자 유입원인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벌어졌다. 단순히 금융 세계화의 부작용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대형 악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금융 세계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세계화된 금융 시스템은 단순히 자본이 움직이는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위기가 전달되는 도화선처럼 변하고 있다. 이제 와서 어느 한 나라가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순진하지만, 세계화를 마치 절대선처럼 여기는 것 또한 순진하다.

국경이라는 방화벽이 사라진 지금 금융 세계화의 부작용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를 나라 안팎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