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대북정책 상호주의 근본적 전환해야"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08.10.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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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선언 1주년 기념 강연

-"상호주의는 대결주의의 또 다른 표현"
-"자존심 상해도 참았다"
-"한반도 평화통일 가능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일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해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상호주의'와 '실용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 "남북 평화의 열쇠는 신뢰"라며 "자존심 상했지만 신뢰를 얻으려 노력했다"고 자신의 재임기간 통일·외교 분야 활동을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10.4선언 1주년 기념강연에 앞서 원고를 배포, "평화가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이고 평화통일 아닌 통일은 없다"며 "대북정책에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盧 "대북정책 상호주의 근본적 전환해야"


노 전 대통령은 A4 용지 17쪽에 이르는 원고에서 줄곧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이어 상호주의와 실용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2005년 대북 직접송전 제안에 대해 "우리가 송전을 제안했으나 북측은 받지 않았다"며 "언제라도 (북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일이라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강 하구나 휴전선 이남에 합작 공단을 조성하자는 주장들은 북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는지 의심스러운 제안"이라며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와 같은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북정책에 관한 한 상호주의라는 말은 대화와 협력 정책에 대해 시비를 거는 데 사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또 "왜 일방적으로 퍼주는가, 자존심도 없는가,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비난 뒤에 상호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상호주의라는 말은 대결주의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실용주의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강조하는 것,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 이런 것은 실용주의인가 이념주의인가"라고 말했다.

또 "연방제 말만 나오면 시비를 걸고 김정일 위원장의 인품을 묻고 6.25 전쟁의 성격이 무엇인지 물어서 시비를 하려고 하는 자세는 실용주의에 맞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기간에 대해 "전략적 유연성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두었으며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또한 북한과 물리적 충돌가능성이 있는 조치에 대해서는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MD(미사일방어체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고 작계5029도 반대했다"고 말했다. 작계5029는 북한의 유사시에 한·미가 북한에서 합동작전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또 "한미 군사 훈련도 최대한 축소하려고 노력했고 남북 간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개별 정상회담에서 1시간 이상을 북한을 변론하는데 시간을 보낸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고 때로는 자존심 상해도 참았다"며 "이 모두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분단 상태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북한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고 분단 고착을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어서 누구라도 조심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평화를 먼저 성취하지 않고는 통일도 성취할 수 없다"며 "통일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통일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가치로서 대북정책의 고유한 목표로 설정, 평화정착을 위한 전략을 말하고 평화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는 권력의 소멸이나 권력의 일부를 양도하는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 하는데 평화통일이라는 것은 이런 일을 합의로 하자는 것"이라며 "스스로 권력을 소멸하게 하거나 양도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속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가능한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그러나 국가의 통일, 민족의 통합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지상의 이념이므로 이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통일을 위해 △이념과 대결주의 극복 △국가주의 사고 탈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남북관계는 협상의 국면에 있고 협상에선 기교가 아니라 원칙이 중요하다"며 △상대의 목적과 이익 존중 △성실하고 합리적인 협상 △결과 이행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날 강연은 이명박정부의 보수적인 대북·외교 기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웹사이트 '민주주의 2.0'을 열고 이른바 '친노'가 세력을 정비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는 가운데 그가 많은 말을 쏟아낸 만큼 이에 대한 논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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