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블랙먼데이, 그리고 9월29일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8.09.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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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가져온 역사적 교훈

대공황, 블랙먼데이, 그리고 9월29일


대공황의 시발점인 1929년 10월 28일 '블랙먼데이'(Black Monday), 다우지수의 사상 유례없는 22.6% 폭락장을 연출한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 그리고 결코 행운이 아닌 '-777' 잭팟 포인트 낙폭을 야기한 2008년 9월 29일 '블랙먼데이'.

3건의 블랙먼데이는 '인간의 탐욕과 어김없이 뒤따라오는 패닉'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시대·경제적 상황은 달리하고 있지만 투기와 위기가 반복되는 악순환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블랙데이를 연출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 대공황의 시발점 블랙먼데이

1929년 10월 28일.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13.47% 폭락했고, 이튿날에도 11.7% 폭락했다. 이틀간의 대폭락은 대공황의 시발점이 됐다. 이전까지 71개월동안 345% 폭등했던 뉴욕 증시는 이날 주가 폭락을 기점으로 향후 2개월만에 40%가 날라갔고, 33개월 동안 87% 급락했다.



미국 경제는 1925년부터 1929년 9월까지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아무런 이익을 내지 못한 기업들조차 상장하면 대박이 터졌고, 묻지마 투자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면에는 만성적 과잉생산과 실업이라는 그늘이 존재했다. 결국 비이성적 과열과 투기를 경험하던 증시는 10월 들어 한순간에 무너졌다. 10월 28일을 기점으로 뉴욕증시는 2개월만에 40% 하락했고, 33개월동안 87% 급락세를 경험했다.

증시 대폭락은 곧바로 실물 경제로 전이돼 경제활동을 마비시켰다. 기업의 부도가 속출했고 실업률은 30%까지 치솟았다. 미국을 경기침체 수렁에서 건져준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뉴욕증시가 대공황 이전 주가 지수를 회복한 것은 1954년 11월23일, 25년만이다.

◇ 호황장이 불러온 유례없는 참사 1987년 블랙먼데이


1987년 10월 19일도 마찬가지였다. 2개월전인 1987년 8월 25일 다우는 사상최고치인 2722.42를 기록, 연초대비 상승률 40%를 기록했다. 5년간 이어져온 증시 상승세로 옆에서 지켜만 보던 일반인들조차 증시로 뛰들었다. 사교 모임에서 조차 주식 투자가 주된 화제거리로 등장할 정도로 주식 열기의 광풍이 몰아쳤다.

증시 전문가들은 과열을 경고했지만 소귀에 경읽기였다. 그렇게 버블은 커지고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 뉴욕증시는 개장 초부터 대량의 팔자 주문이 쏟아졌고, 다우지수는 하루 동안에만 22.6% 폭락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회복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 월가 금융기업들이 불러온 2008년 9.29 블랙먼데이

뉴욕증시는 2002년부터 장기 호황 국면에 접어 들었다. 저금리 기조를 틈타 자산 가격도 치솟았다. 과거 거품 논란은 씻은듯 사라졌고 모든 사람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해 금융권으로 몰려들었다. 더 큰 수익률을 향한 욕심에 사람들은 너도 나도 파생금융상품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2006년 12월을 기점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금융권은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전의 투자 관행을 유지했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신용경색은 금융권에 치명타를 날렸다. 레버리지를 통해 투자를 일삼던 대형 투자은행들은 하나둘씩 몰락해 월가에서 자취를 감췄다. 살아남은 모간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마저 일반 은행지주회사로 구조 전환을 선택했다.

월가는 미국 정부가 나서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이번에도 금융위기를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의회는 이번에는 달랐다. 명분없이 세금을 투입해 부도덕한 투자를 일삼던 월가 투자은행을 살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11월 상·하원 선거를 앞두고 월가 부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실망한 증시는 급락했고, 뉴욕증시에서 하루 동안 1조2000억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월가가 죽었다'고까지 표현된 치욕의 교훈을 언제까지 기억할 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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