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기 "파생상품과 타이타닉"

윤영호 통신원(Seven Rivers Capital 대표) 2008.09.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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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옵션이 합리적인 투자 수단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선물 옵션을 소개하는 책을 쓴 적도 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이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러나 피터 린치는 다르게 생각했다.

'선물 옵션을 비롯한 파생상품이 합리적 투자 수단이라면, 타이타닉이 물이 새지 않는 배였다는 말도 사실이다!' 지금부터 한 20년 전쯤에 한말인데, 이제야 다가온다. 타이타닉은 물이 새는 배였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침몰한 배였다. 이해할 수 없는 파생상품이 범람하더니,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공포로 몰고 있다.



파생 상품에 대한 투자는 '벌거벗은 임금님 투자'였다

파생 상품은 금융공학의 총아로, 묘한 매력을 준다. 파생 상품은 선진 금융을 상징한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은 어린아이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파생 상품에 대한 투자 제안이 들어오면, 아는 척을 해야 한다. 아는 척 하는 방법은 쉽다.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르면서 넘어가고, 모르면서 투자한다. '나는 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할 수 없다. 월가에서 시작된 파생상품은 그렇게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전문 투자가가 자신은 파생 상품을 이해하고 투자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틀렸다. 조금의 수학적 지식과 약간의 노력만 있으면, 파생 상품의 원리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 선물, 옵션은 물론이고, 스왑도, 스프레드도, CDS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원리 이해와 금융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많은 투자가들이 변동성 상품에 투자하면서, 변동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변동성의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면서, 변동성 상품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변동성이 언제 증가하고, 언제 감소하는지 감을 가지지 못한 채 투자한다.

무지는 열등감을 낳고, 열등감은 맹목을 낳는다


무지는 열등감을 낳고, 열등감은 맹목을 낳는다. 파생 상품이 결합하면, 공학적으로 보이고, 위험이 회피 되는 것으로 보이며, 무엇인가 안전한 것으로 보인다. '헷지'라는 개념도 파생상품이 들어감으로서 아름다워(?) 보인다. 현재 많은 중소기업이 스노볼, 키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들은 변동성 상품에 투자하면서, 그게 변동성 상품이란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그게 헷지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헷지라는 말처럼 정말 위험이 회피된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우리에겐 헷지에 대한 신하가 존재한다. 헷지는 절대선이라는 신화다. 이 또한 파생상품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 우리는 헷지하지 않아야 할 때 헷지를 하고, 헷지를 해야 할 때는 헷지를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파생상품에 대한 열등감과 맹목이 빚은 결과다.

자산이 수조, 수십조원인 금융기관이 수백억원 상당의 달러화 자산에 투자하면서, 달러에 대한 숏 포지션을 취한다. 달러 가치가 하락할 때, 즉 원화가치가 상승할 것에 대비하여, 달러 선물 매도 포지션을 취한다. 이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스스로 아는지 모르겠다. 자산이 5조인 금융기관이 500억원 상당의 달러화 자산에 투자한다고 하자. 총 자산의 1/100을 달러화 자산에 투자하면서 달러화에 대한 헷지를 한다. 이 회사는 원화 강세를 손실로 인식하는 것이다.

99/100이 원화자산인데, 원화 강세가 어떻게 그들에게 불안 요소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 웃긴 일도 있다. 달러화가 아닌 자산에 투자하면서, 즉 달러화와 연관성이 적은 제3국의 화폐에 투자하면서, 달러화에 대한 헷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리스크에 대한 인식 부족, 파생상품과 헷지에 대한 맹목이 나은 결과다.

위기는 단순하지 않다

현재의 글로벌 금융 위기는 단순하지 않다. 기초 자산에서 파생 상품이 나오고, 파생이 파생을 거듭한다. 성은 모래 위에 세워졌지만, 그 성은 너무 아름다워 현실과 모래성을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수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자들이 쉽게 파생상품으로 망했듯이 누구도 파생상품의 위험을 알지 못했다. 블랙도, 숄즈도, 그린스펀도, 버냉키도 마찬가지다. 파생상품은 타이타닉이라고 말한 피터 린치조차도 그 위험을 다 알고 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통찰력만은 믿음직하다.

현재의 글로벌 위기는 그 파생의 구조가 여전히 다 들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어떠한 변수가 어떻게 모래 성에 영향을 주는 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 어떤 파생상품이 무너질지, 어떤 회사가 무너질지, 그래서 어떤 나라가 구제금융이라는 말을 들고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도 신뢰하지 않게 된다. 불신은 금융을 붕괴시킨다. 신뢰하지 않으면 누구도 아무에게도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그리 되면 금융은 그저 금고로만 존재할 뿐이다.

필요한 것은 규제다

이번 글로벌 위기는 전례가 없는 금융 시스템의 위기다. 그 영향이 얼마나 깊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영향이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글로벌 금융 위기를 보면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실수를 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련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아니고, '무식한 규제'다. 저게 뭐냐고? 저건 왜 벌거벗었느냐고? 매우 무식하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규제가 촌스럽고 천박한 것으로 인식 될 때, 위기는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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