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로 개입 명분얻은 외환당국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9.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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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헤지 통화옵션 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올초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용인하는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이 이제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명분으로 역할하고 있다.

2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8.3원 오른 1188.8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환율은 1169원 선에서 장을 시작한 뒤 꾸준히 상승폭을 늘려 오후 2시14분께에는 1200원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곧 이어 당국이 대규모 실개입에 나서면서 환율은 1190원선 아래로 밀려났다.

앞서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이날 오전 "정부는 환율변동이 지나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다.



정부는 △글로벌 달러 강세 △월말·분기말 수출업체들의 결제 수요 △수출보험공사의 환헤지 관련 달러화 수요 등이 겹친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수보에서만 약 5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매수 수요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상승폭 축소에도 불구하고) 환율 급등폭은 여전히 지나친 수준"이라며 "내일 상황은 내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개입에는 환율이 추가로 급등할 경우 물가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키코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더욱 불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개입에 따른 외환보유액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환율 급등을 방치할 경우 키코 피해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에서는 개입 명분이 된다.

키코란 원/달러 환율이 일정범위 내에 머물고 당초 약속한 행사환율이 시장환율보다 높을 경우 행사환율로 달러화를 팔 수 있는 통화옵션상품이다. 대개 원/달러 환율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수출기업들이 향후 수출대금으로 받을 달러화를 어느 정도 보장된 값에 환전하기 위해 가입한다.



그러나 일정수준 이상으로 급등할 경우 계약금액의 약 2배만큼 달러화를 사서 팔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에 환율이 급등할수록 피해액도 함께 커진다. 자체 환헤지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가입하는데, 올들어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약 2조원의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최근 키코 피해 기업들을 지원키로 방침을 정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키코 피해 기업들에 대해) 사계약 차원을 넘어 위기관리 차원에서 이번주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키코 관련 원리금에 대해 리스케줄링(채무재조정)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해당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은행이 지원하겠다"며 "금융감독원이 중재를 해서라도 흑자부도가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다음달초 국정감사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처럼 대규모 개입에 나섰음에 비춰 다음달 중순 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뒤에는 정부의 개입 강도도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대개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환율 방어를 위해 국부를 소진한다는 국회의원들의 추궁을 고려해 개입 강도가 약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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