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잠수타고' 폴슨만 남은 이유는

유일한 기자, 장웅조 기자 2008.09.2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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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법안 의회 쟁점 되자 버냉키 '중립'으로 급선회

7000억달러 구제법안이 진통 끝에 28일(새벽) 의회의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9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였다. 행정부가 의회에 법안을 제안한 지 일주일만이다. 이기간 가장 흥미로운 행보를 보인 인물은 벤 버냉키 연준(FRB) 의장이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손을 잡고 법안 통과를 주도하던 버냉키 의장은 어느 순간 갑자기 수면 아래로 잠적했다.



법안 승인이 의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지난주 중반 이후부터는 아예 회의 자리나 공식석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23일(화요일, 현지시간)까지만 해도 폴슨 장관과 함께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구제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미국 경제가 침체로 간다"는 공격적인 언사를 퍼붓던 그였다. 이후 버냉키의 모습은 7000억달러 구제법안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와관련 블룸버그통신은 버냉키 의장이 폴슨 장관과 협력해 구제금융 법안을 밀다가 정치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고 27일 보도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버냉키 의장의 이같은 이중 태도는 화제에 오르고 있다.



버냉키는 상원에 증언을 하러 갔던 지난 주 초만 해도 "의회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중대한 위협'에 대해 빠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이 구제금융 법안에 반발하면서 승인이 지연되고, 정가의 쟁점이 되자 그는 태도를 바꿨다. 재무부와 의원들에게 그가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의 세부사항을 협상하는 데 있어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고 있음을 확실히 한 것이다.

결국 폴슨 장관만 외로이(?) 혼자 남아 의회의 공세를 버텨야 하는 형국이 됐다.


그간 버냉키와 폴슨이 가까이서 함께 일해 온 것을 감안하면 버냉키의 이러한 '발빼기'는 매우 주목할 만한 변화다. 폴슨이 부시 행정부에 자리를 잡은 2006년부터 그들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아침식사를 함께 했고, 중요한 경제적 현안에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난 3월 베어스턴스를 구하기 위해 JP모건에 290억 달러를 대출할 때도, 지난 주에 납세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며 850억 달러를 AIG에 대출하기로 결정할 때도, 리만 브라더스를 파산케 하겠다고 결정할 때도 FRB와 재무부는 의견을 같이 했다.



블룸버그는 버냉키가 폴슨 장관을 의회의 표적으로 남기면서 FRB를 워싱턴으로부터 중립적인 조직으로 복원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버냉키가 원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인사였다는 것이다.

2006년 FRB 의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는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에 대해 선을 그으며 연방예산과 같은 정치적 이슈에는 관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상원 은행분과위원회에서 버냉키 의장은 "독립성과 무당파적 상태를 지키는 것이 의장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버냉키 의장이 막판에 전면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중앙은행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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