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람끼리도 종부세 얘기를 나누면 서로 얼굴을 붉히곤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보유세에 대한 인식 등에 따라 찬반이 극명히 엇갈리기 때문이다. 종부세 논쟁이 벌어지면 중립과 타협은 없다. '조세정의'와 '세금폭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이념 논쟁만 되풀이된다.
2005년 8·31대책이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이념세로 자리잡은 종부세가 사실상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정부가 종부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대폭 완화하고 세율을 절반으로 인하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 정부는 나아가 종부세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밝힌 종부세 개정 이유를 보면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계추를 3년 전으로 돌려 보자. 2005년8월31일 당시 재경부는 '조세 정의'와 '세제 합리화'를 내세우며 종부세와 양도세 등 세제를 강화했다. 일각에서 세금폭탄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우리나라 보유세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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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강조한 게 재산 대비 보유세 실효세율.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재산 대비 보유세 실효세율이 평균 1%가 넘는다며 2009년까지 고가주택 보유세 실효세율을 선진국 수준인 1%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들이 우리나라 국민소득대비 종부세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묻자 재경부 세제실은 "보유세는 재산을 기준으로 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세제실 고위관계자는 한 술 더 떠 "강남 사람들의 인품이 훌륭해서 집값이 오른게 아닌만큼 고가주택보유자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8년9월23일. 재정부는 `종부세 완화 및 향후 폐지'방침을 밝히면서 8·31때와 마찬가지로 '조세 정의'와 '세제 합리화'를 내세웠다. 종부세를 많이 내는 서울시의 소득대비 보유세 실효세율이 7~8%로 뉴욕(5.5%), 도쿄(5.0%) 등 선진국보다 매우 높고 우리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미국의 40% 수준임을 고려할 때 체감 부담률은 훨씬 높다는 것.
특히 소득 4000만원 이하인 자(종부세 납세자의 35%)의 보유세 부담이 소득의 46%에 달한다고 재정부는 설명했다. 3년 전에는 '보유세 기준이 재산'이라고 강조하더니 이제와서는 소득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뀔 수 있다. 특히 과거 잘못된 정책이라면 바꿔야 한다. 그러나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도대체 뭔지, 조세 정책의 기본 원칙은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 한 입 갖고 두 말 하는 식의 세정이라면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