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딜레마' 정부의 선택은 '구제'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9.2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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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장관 "위기관리 차원 정부가 적극 대응"

"키코(KIKO)로 손실을 본 기업 중에는 환헤지에 필요한 금액보다 2~3배 더 많이 가입한 경우도 있다. 그런 거래를 하면서 손실이 났으니 보상을 해 달라는 것인데,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은행과 기업이 해결할 문제다"(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 19일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

"키코가 없었다면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한 기업에게는 지원을 해야 한다. 그것이 시스템 위험을 줄이면서 부실을 억제하는 길이다"(전광우 금융위원장, 22일 금융경영인 조찬강연회 직후)



은행들이 판매한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은 중소기업들의 문제를 놓고 정부에서 내놓은 상반된 발언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키코로 손실을 입은 중소기업 중에는 키코를 통해 '환헤지'라기 보다는 돈놀이에 가까운 '환투기'를 한 곳들도 있다. 그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시장원리에 맞고,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도 막는 길이다.



반대로 영업흑자를 거두며 멀쩡히 사업을 해오던 중소기업이 키코로 인해 단숨에 무너져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은행들은 돈을 떼이는 것도 반길 일은 아니다. 게다가 그런 기업이 한둘이 아니라 수백개라면 더욱 문제다. 지난 16일 영업흑자에 불구하고 키코 손실로 도산한 태산LCD가 대표적이다. 이런 기업들에게는 순간의 실수를 딛고 '패자부활'할 길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관된 목소리를 지향하는 정부에서, 그것도 고위당국자들 사이에서 이런 상반된 발언이 나온 것은 정부 내에서도 이 '키코 딜레마'를 놓고 고민이 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고민 끝에 정부가 결국 키코 피해 기업들에 대해 도움을 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키코 피해 기업들에 대해) 사계약 차원을 넘어서 위기관리 차원에서 이번주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키코 관련 원리금에 대해 리스케줄링(채무재조정)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해당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은행이 지원하겠다"며 "금융감독원이 중재를 해서라도 흑자부도가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키코 사태가 시장원리로 해결해야 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의 개입 또는 지원이 필요한 '시장실패'의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 정부가 부실금융회사 지원에 총 1조달러를 쏟아붓기로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키코 관련 손실액은 약 1조6000억원에 이른다. 피해기업은 약 500개로 집계됐다.

그러나 투기적 키코 거래를 통해 손실을 입은 기업들에 대해서는 일정수준 책임을 물리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키코 피해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단기적으로는 부실위험을 제거하고 시장실패를 바로잡는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모럴해저드를 부추겨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기업들의 채무를 일부 재조정하더라도 투기적 키코 거래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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