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개입없인 경제 '바닥' 최소 2년"

뉴욕=김준형 특파원 2008.09.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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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권위자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 인터뷰]


-7천억불, '만병통치약'아니지만 '차선책'
-미, 인플레 증세 신용강등 등 대가 치를 것
-세계 금융시장 '그림자 은행 시스템'붕괴 대 전환기
-중앙은행-감독기구 분리 모델 취약, 한국도 대비해야


"美정부 개입없인 경제 '바닥' 최소 2년"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상당한 효과는 있을 것"



미국 금융시장, 특히 금융위기 관리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꼽히는 신현송(49.사진)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7000억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은 금융시장 위기를 완화시키는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구제법안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차선책'일뿐 보다 근본적인 세계 금융감독 체제 개편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 정부의 사상 유례없는 시장개입으로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 세금 증가, 신용등급 강등 위험 등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개입이 없이는 미국 경제가 바닥을 치는데 최소 2년이 걸릴 것이겠지만, 구제법안이 실행되면 바닥이 다소 앞당겨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를 포함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금융위기 타개책을 마련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자문역할을 하고 있는 신교수로부터 세계 금융권에서 일고 있는 역사적 지각변동에 대해 들어봤다.

-미 재무부가 700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안을 마련했다. 이정도면 시장을 안정시키고 금융회사를 구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7000억달러는 상당한 규모의 금액이며 문제를 풀어가는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의 상업은행 대출자산이 11조달러이고, 증권사나 비은행 금융기관, 패니 매·프레디 맥을 합치면 전체 대출자산이 20조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7000억달러는 꽤 많다고 볼 수 있다.
파생상품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손실예상액(Value at RIisk:VaR)등이 줄어들면서 금융회사들의 재무상태가 개선될 것이다.
물론 구제법안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취한 조치중 가장 중대한 진전이다. 구제법안은 신뢰상실에서 비롯된 금융회사들의 재무상태를 개선시키자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증자를 통해 자본을 조달하는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주식가치 희석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로 어려운 상황이므로 구제법안이 차선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전례없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고,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며,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떤 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고 보는가.



▶가장 즉각적인 여파는 재정적자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통화긴축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재정적자 확대에 따라 세금이 올라가는게 궁극적으로는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국책 모기지 회사에 대한 구제책으로 인한 국채 발행 증가등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도 도전받을 수 밖에 없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감독, 특히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 '바젤Ⅱ협약'은 이제 무용지물이다. 근본적인 은행 감독 개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신교수는 바젤Ⅱ가 자기자본에만 초점을 맞추고 유동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 실용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해왔다)

-금융위기가 하나의 요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알지만, 그래도 위기를 촉발한 가장 중요한 배경을 든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레버리지 확대를 유도하는 보상체계로 인해 리스크를 제대로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기적 관점의 시장 평가등으로 인해 증권을 담보로 한 차입에 의지하는 '그림자 은행 시스템(shadow banking system)이 자리 잡았고, 이로 인해 과거보다 훨씬 큰 레버리지를 발생시켰다. 이같은 레버리지를 해소하는 과정은 뱅크런(은행고객들의 자금인출)만큼이나 급속히 일어난다.



-정부의 구제방안 이외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뤄져야 할 조치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라고 보나.

▶아까 말한대로 보다 신중한 감독체계가 가장 중요하다.
바젤Ⅱ는 이제 죽었고, 보다 근본적인 감독체계의 등장은 이제 시간문제일뿐이다.
우리가 맞고 있는 새로운 '규제의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주된 역할을 맡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기구로서의 역할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대신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조정 기능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행정부(재무부)가 구제법안을 주도하고 있는데, 중앙은행들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행정부와 중앙은행간의 바람직한 역할분담은 어떤것인가.



▶중앙은행들은 자금을 공여할 뿐, 금융회사들의 자본을 확충시킬수는 없다.
금융회사들의 재무 건전성 위기를 여신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은 성공할 수 없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것도 이같은 잘못된 방식때문이었다.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지원하고, 재무건전성 지원은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기구 즉, 재무부가 맡아야 한다.
중요한 관건은 금융 감독의 문제이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앙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을 분리한 영국식 체제는 결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 교수는 영국 방식을 따르고 있는 한국 역시 금융감독에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주택시장이 반등하지 않는 한 미국 경제의 상황은 더 악화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미국 경제의 '바닥'은 언제가 될 것으로 보는가.

▶구제법안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경제가 바닥을 치는데 최소한 2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정부 개입으로 바닥이 약간 앞당겨질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정부개입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 금융시스템 뿐 아니라 자본주의 전체적 관점에서도 역사적 전기를 맞고 있는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2주동안 일어난 금융시장 상황의 의의를 정리하자면.

▶불과 2주만에 미국 금융시스템은 근본적 변화를 겪었고, 이는 획기적인 상황전개이다.
'최근 2주'는 세계 금융시스템이 높은 차입률에 기반한 '그림자 뱅킹' 시스템에서 차입률이 낮고 보다 엄격하게 감독되는 체제로 돌아서는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은행업은 골드만 삭스식의 매력적인 모델이 아니라 공익설비(유틸리티)같은 게 될 것이다.

-실제로 골드만 삭스와 모간 스탠리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했는데, 투자은행의 시대는 끝났다고 볼수 있나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가 금융지주회사를 선택한 것은 차입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증권화'를 통해 수익을 내 온 '시장 기반 은행체제(market-based banking system)' 급성장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만 해도 전통적 은행(업계 용어로 '저축기관(savings institutions)은 비은행권 금융회사들보다 5배나 많은 모기지 자산을 보유했었지만 1990년대 들어 역전됐다. 지난해에는 비 은행권 금융회사들이 11조달러에 달하는 주택 모기지의 3분의2를 차지해왔다.

투자은행들은 이 과정에서 거대한 성장을 해 왔으며 최근의 위기는 이런 성장의 기관차가 차단벽에 충돌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시장 기반 금융시스템'의 거침없는 성장추세의 역전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이 강화되면서 이제는 전통적 은행체제와 시장기반 금융시스템의 적절한 조합을 회복할 것으로 본다.



<신현송 교수는 누구>

금융위기 및 대처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미국의 경제위기 이후 학계와 실물분야, 정책당국으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학자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자산이 50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규모의 기준을 마련했다.

지난 8월 미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미 연준 연례회의에서 "신용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며 금융위기가 통제하기 어려운 두번째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한바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사우스햄프턴대와 런던정경대(LSE)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미 프린스턴대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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