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런 '불행의 전주곡' 막으려면

박영암 , 시장총괄 DESK 2008.09.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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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와치]불완전 판매 등 신뢰상실…장기투자 유인책 필요

펀드런 '불행의 전주곡' 막으려면


여의도 증권가에서 입에 담길 꺼려했던 유령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투자자들이 펀드를 한꺼번에 되찾아가는 '펀드 런'의 불길한 전조가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리스크 관리 소홀과 고객이익을 등한시한 업계의 '자업자득'이라며 조소하기에는 최악의 사태가 물고 올 충격이 너무나 크다.

리먼이 발행한 ELS(주가연계증권)을 편입한 580억원 규모의 파생상품펀드(ELF)
가 상당기간 환매 중지됐다. 중개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 운용사들이 국내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리먼에서 직접 매입한 ELS가 사단이다. 또한 리먼의 자회사가 지급보증한 채권을 사들인 3300억원 규모의 채권형펀드도 당분간 환매에 응할 수 없다.



지난 19일 '우리 파워인컴 파생상품펀드' 가입자 50여명은 우리은행 본점을 방문해 -80%의 원금손실에 대한 보전을 요구했다. 가입자들은 판매당시 우리은행측에서 '확정금리' 등 원금보장상품으로 투자를 권유했다며 불안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주장했다.

이 두 사례는 최근 국내펀드시장의 불안정한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 환매중단이라는 금융시스템의 오작동과 판매채널의 불완전 판매라는 업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자칫 수익률 하락에 예민해진 투자자들에게 '펀드 런'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시장충격으로 펀드환매가 일시 중단된 것은 2003년 이후 5년만이다. 당시 LG카드와 SK글로벌 사태로 펀드 환매가 일시 중단됐다. 물론 환매를 늦게 신청한 고객이 리먼 관련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선의의 조치라고 감독당국은 해명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환매가 제약받는다는 것은 원금손실 위험을 안고 있는 증권가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조치다.

'우리파워인컴 파생상품펀드' 사태는 그동안 곯았던 상처가 터진 꼴이다. 그동안 은행권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문제점은 수없이 지적됐다. 단지 수익률이 좋았기에 공개적인 집단항의가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원금보장이 가능하다고 선전했던 파생상품펀드에서 80%가량 손실이 났다. 가입자들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면서까지 법정소송 등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을 태세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국내증시는 '바이코리아'의 전철을 되밟을 수 있다. 특히 최근 환매에 나서려는 장기 펀드투자자들에게 이번 사태는 환매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일반투자자들이 일정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대량 환매에 나선다면 한국증시는 물론 실물경제가 받을 충격은 감히 생각조차 하기 싫다.


현시점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신속하고 시장친화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손실을 감내하고 보다 길게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확실한 유인책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업계에서 주장해 온 '어린이펀드'와 '퇴직연금' 등 장기투자펀드에 비과세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정부도 시장 안정대책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수차례 밝힌 터라 신속히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는 것이 좋다.

은행 증권사 등 판매채널도 불완전판매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연간 1.3%의 판매보수를 챙기면서도 대고객 서비스가 전무하다는 지적은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이번 고객항의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또한 장기투자자에 대한 판매수수료 차등 적용 등도 현시점에서 판매사들이 고민해야 할 과제다.

최근 간헐적으로 보이는 펀드 런의 전조에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형 제방이 개미구멍에서 무너지듯이 이들 현상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펀드자금은 물밀듯이 빠져나갈 수 있다. 한국증시가 '쏠림현상'이 가장 심하다는 사실을 감독당국과 관련업계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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