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 그리고 구축효과(1)

박문환(샤프슈터) 동양종금증권 강남프라임지점 2008.09.22 07:40
글자크기

[샤프슈터의 증시 제대로 읽기]<4>메디치가가 부를 일군 사연

편집자주 샤프슈터. 동양종금증권 강남프라임지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문환(43) 팀장의 필명입니다. 주식시장의 맥을 정확히 짚고, 가급적 손해보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그의 투자 원칙과 성과에 따라 붙여진 필명이지요. 한국경제TV(와우TV)에서 10여년 동안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투자정보를 제공했던 샤프슈터 박문환 팀장이 오늘(9월1일)부터 매주 월요일 개장전에 머니투데이 독자를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환영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충격과 공포, 그리고 구축효과(1)


유대인들의 자본 형성 과정으로 과거로부터 돌이켜 보면 참으로 재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역사상 최고의 부를 만든 두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인류 최초 금융자본의 효시...메디치 가문



지금 많은 사람들이 유럽을 동경한다.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디가 가장 가고 싶은지 물어 보면 유럽여행이 으뜸으로 꼽힌다.

유럽하면 모두 잘 먹고 잘사는 나라로 깊이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유럽이 이런 멋진 곳이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었다.



중세 때의 유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인구만 많다보니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약간의 먹을 것도 지주 계층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암울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더더욱 국민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게다가 곡식을 여물게 하는 햇빛이 잘 드는 땅덩어리를 차지하고자 유럽은 언제나 전쟁의 포화 속에 있었고 전쟁과 기아만이 중세 유럽의 대명사였다.


이런 유럽이 세상에서 우뚝 서기 시작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상업과 금융의 발달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전 르네상스 시대에 뛰어난 감각을 가진 상인들이 출현했다. 그들은 상업 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부를 이룰 수 있었지만 부는 축적할 수 있는 도구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커다란 부에 이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 몇몇 상인들에게서 금융이라는 부의 축적방법이 개발되고 체계화 되면서 유럽을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만들어 놓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링컨이 했던 말로 기억하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라는 말은 사실 이때 만들어진 말이었다.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사업을 하면 부는 저절로 들어온다는 말에서 유례 된 말이다.

아무튼 르네상스를 전후로 서서히 부가 쌓이기 시작하는 시기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부를 이룬 사람이 있다.

절대 왕권 시대에 단지 노력으로서 인류역사상 가장 큰 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보여주었던 사람... 바로 “비에리 메디치”였다.

메디치가의 직업은 방카

그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방카”이다. “뻥카”가 아니고 “방카”다. 요즘 말로 하면 뱅커....즉 금융인이다.

1400년대 프랑스의 리용에서는 유럽의 전체 상인이 참가하는 엄청난 시장이 있었다. 그런데 행사장에는 늘 좁은 벤치가 놓이게 된다. 그곳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 상인들의 환전이 이루어진다.

이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사정은 물론이고 바꾸려 하는 나라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고 그에 걸 맞는 적절한 환율로 공평하게 환전을 해주었다.

경제적으로 불안한 나라의 화폐가치는 직관적으로 이들 환전상에 의해 조절이 되었으며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이들은 편안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메디치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방카는 이탈리어 말로 벤치(긴 의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뱅크가 된 것이다.

은행의 어원이 겨우 의자라니...좀 실망스러운가?

그는 인류 최고의 부자였는데 그의 자산가치를 환산하면 현존하는 최고의 부자 빌게이츠는 그저 중산층에 속했다고 하니 엽기적인 부를 쌓았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결국 세계 최고의 부자는 역시 금융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메디치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돈의 흐름을 확고하게 꿰뚫어 보았다. 오랜 관찰 끝에 환전에서의 가장 큰 시장은 교황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교황청으로 보내지는 헌금은 일단 로마로 보내졌다. 그런 다음 다시 각 지역으로 알맞게 분배 되었다. 메디치는 교황청의 환전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에서 거두어 들이는 헌금이 다시 로마로 왔다가 다시 프랑스로 보내지게 되는데 거의 대부분의 돈들이 그대로 갔다. 굳이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모아진 헌금 중에서 일부는 남겨두고 교황청으로는 극히 일부만 가져가도 되었다.
즉 헌금은 서류상으로만 메디치가 가지고 있었고 로마 교황청은 돈을 서류상으로만 받았다. 그리고 분배 요청서를 들고 분배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즉 돈이 서류상으로만 움직였지 사실 상 돈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온라인 송금의 형태를 그 당시에 그는 인류 최초로 고안을 해 내었던 것이다. 인류 최초의 온라인 송금이라...대단한 발상이다. 이로서 거액을 직접 들고 다니다가 도난을 당하는 일은 사라져버렸다.

온라인 송금의 형태에 맛을 들인 교황청은 이제 메디치 가문이 없으면 안될 정도로 엄청난 신뢰를 갖게 되었고 메디치는 여기에서 일약 스타가 되게 된다.

많은 부자들이 그랬듯이 메디치 가문에서는 상당히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

특히 미켈란젤로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는 메디치 가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아마도 훌륭한 예술가가 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