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兆)달러가 깨지면 제비처럼 움직인다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09.22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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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큰 나라다. 툭하면 1조달러다. 1조원이 아니라 1140조원이다. 이 얼마나 큰 나라인가. 검은 9월, 미국은 조달러 단위의 금융사고와 이벤트로 치장됐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금융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막대한 달러를 투입키로 한 것이다. 금융시장도 조달러 단위로 움직였다.

지난주 월가를 둘러싸고 나온 1조달러 얘기만 정리해도 이렇다. 가깝게는 7000억달러에 이르는 정부의 부실 모기지채권 매입 구제법안에 대해 당장은 7000억이겠지만 추가로 더해져 1조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정부는 이같은 공적 자금 투입을 위해 정부의 부채 한도를 현재의 10.615조달러에서 11.315조달러로 조정했다. 증가한 만큼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뜻이다.



구제법안이 발표되기 직전 미정부는 머니마켓펀드(MMF)시장 안정을 위해 5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단기채를 중심으로 안정성을 최우선하던 MMF까지 손실을 입고 자금시장 불안감을 증폭시킨데 따른 조치였다. MMF 펀드시장은 3조5000억달러, 최근 환매가 늘어나 3조4000억달러 전후로 줄었다.

미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내달 2일까지 799개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했다. 공매도는 미국 당국이 '우리는 선진시장이다. 이렇게 자유로운 공매도 제도를 오랜기간 유지하는 곳이 없다'며 자랑하던 바로 그 거래관행이다. 그런데 한시적이지만 금융주 공매도는 금지됐고 대상도 유동성 위기가 심한 주식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공매도는 헤지펀드가 즐겨한다.



헤지펀드는 증시의 등락에 상관없이 이익을 꾸준하게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객들 역시 헤지펀드의 이같은 속성을 좋아한다. 헤지펀드 규모는 3조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SEC는 그러면서 옵션시장에 참여하는 브로커들의 경우 공매도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옵션시장의 유동성 증가에 기여하는 브로커들까지 공매도를 제한할 경우 자칫 1.5조달러에 이르는 하루 거래대금을 지닌 옵션시장의 경색을 우려한 것이다.

SEC의 공매도 규제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증시에 이어 나왔다. 전세계 주요국 증시 당국은 공매도를 증시 하락의 주요 원흉으로 꼽고, 공매도를 규제하기로 했다. 공매도 등에 따라 증발한 시가총액은 전세계적으로 3.8조달러에 달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9월들어 17일까지 증발한 시총은 5.3달러로 추정됐다.


이같은 주가폭락이 7000억달러의 구제법안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전전주에는 미재무부가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2000억달러를 투입하는 구제금융을 단행했다. 두 국책 모기지업체는 12조달러 규모의 미국 모기지시장에서 5조달러를 점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용경색으로 미국 금융기관의 자산상각은 4300억달러에 이른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각이 1조달러를 넘어설 수 있으며,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경우 추가 상각이 1조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금융시장에 오래 몸담았던 전문가인 찰스 모리스는 1조달러의 상각을 예상했다.

종합해보면 결국 '1조달러' 규모 이상의 시장과 자산, 금융산업에 영향을 줄 때 미정부와 중앙은행이 신속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나온 구제, 지원 조치가 불과 2주동안 나온 것이다. 큰 미국이지만 1조달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난해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은 13조8112억달러였다.

베어스턴스를 매각을 통해 살린 것은 1조달러가 훨씬 넘는 신용디폴트스왑(CDS)시장에 베어스턴스가 깊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먼을 방치한 것은 파신 이후의 충격이 1조달러에 이를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AIG를 살린 것은 규모가 리먼에 비해 훨씬 컸다.

중국 CSI300지수는 19일 9% 넘게 급등했다. 폭등전 CSI300지수는 올들어 64% 하락했고 증발한 시가총액은 2.64조달러에 달했다.

한국도 조(trillion)단위의 이벤트 대열에 동참했다. 분야는 부동산이었다. 2018년까지 500만가구를 짓기로 했는데 이를 위해 해마다 12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전세계 실물경제, 금융시장 흐름과 거리가 먼 주택시장 활성화대책이었다. 반가워해야할 지 아니면 서글퍼 해야할 지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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