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이후 최대구제,실용위한 新관치?

유일한 기자, 엄성원 기자 2008.09.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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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관치 종합선물세트.."위기 앞에 시장은 없다"

미국 정부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대공황 이후 최악인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총 7000억달러(약 800조원)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이번주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고 나면 부실 모기지채권 인수를 통한 금융위기 수습이 본격 시작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 차원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금융시장의 혼란이 심각하고 광범위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난 후 과감하게 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베어스턴스 인수부터 시작된 구제가 일단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앞서 지난 2주동안 미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준(FRB)은 2000억달러를 들여 패니매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했고, 유동성 위기에 몰린 AIG를 살리기 위해 850억달러 긴급 지원, 79.9% 지분과 경영권 확보했다. 3조4000억달러 규모의 머니마켓펀드(MMF)시장 안정을 위해 500억달러 투입했고, 799개 금융주에 대한 전면적인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 와중에 리먼 브러더스는 파산신청을 했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됐다.

하나같이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인 흐름이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이런 일을 했는지 의심스럽지만 사실이다. 관치의 종합선물세트다.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신(新)관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에 대해 금융위기를 틈타 미국 자본주의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관치로 무장된 진화의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라 할 수 있는 검은 9월, 미국 당국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개입을 단행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1980년 레이건 행정부 이후 주창했던 시장의 자유를 공화당 스스로 저버렸고, 자유에 뒤따르던 수많은 신념들이 무너졌다. '번영을 위한 최선의 길은 금융시장이 자본을 배분하고, 위험을 선택하고 이익을 즐기며 손실을 흡수하도록 한다'는 생각은 이제 월가에서 찾아볼 수 없다. 금융주 하락을 막기 위해 월가의 핵심 거래관행이었던 공매도를 무조건 금지한 것은 역사가 기억할 일이다.

시장은 과열을 스스로 식힌다는 법칙도 효력을 잃었다. 정부는 약자인 일반 소비자와 소액투자자를 보호하고 1987년 블랙먼데이나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CTM) 사태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 일시적으로만 개입한다는 생각도 과거의 유물이 됐다. 당시에도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는 조치는 있었지만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민간기업을 국유화하는 일은 없었다.


골드만삭스 출신인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성가신 정부 개입은 미국 금융이 글로벌 경쟁력을 고취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리처드 실러 뉴욕대 교수는 "미국인은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가급적 손을 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자유시장 기풍이 강했고 레이건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고 정부가 문제다고 생각했다"며 "이제 투자자들은 '시장이 문제이며 정부가 해결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큰 위기 후에는 새로운 규제가 따른다. 규제는 위기가 해결되면 해소되거나 변질된다. 대공황의 교훈으로 1933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겸업을 금지하는 '글래스 스티걸법'이 탄생한 게 대표적인 예다.

신관치는 규모 뿐 아니라 개입의 속도면에서도 두드러진다. 실러 교수는 "대공황 때는 위기가 다 확인되고 나서 개입이 단행됐다. 지금은 예상되는 위기를 막기 위해 미리 움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세우는 개입의 명분은 미국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침체 방어다. 금융시스템 위기로, 경기가 파탄날 수 있었다는 현실론이었다. 대대적인 세금 투입만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 앞에서 오래된 신조는 땅바닥에 묻혔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폴슨 장관과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옳은 선택을 했는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현실론에서 출발한 것인 만큼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금융시장에 팽배한 공포가 사라지고 모기지시장이 안정돼 결국 투입된 세금이 수익으로 되돌아온다면 신관치는 미국 자본주의의 힘을 과시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문제의 해결이 지연된다면 미국 자본주의는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 벌써부터 관치를 위해 마구잡이로 찍어낸 달러화에 스스로 질식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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