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사라진다" 100년 은행의 비밀

프랑크푸르트(독일)=이새누리 기자 2008.09.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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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금융강국 KOREA] 세계 금융리더를 해부한다 ②도이치방크

독일의 맨하탄, 뱅크푸르트(Bankfurt)라고 묘사되는 독일 최대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위치의 테도어호스(Theodor-Heuss)에 자리 잡은 도이치방크의 현대식 고층건물 2채는 수많은 마천루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스테인레스 금속과 파란색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느낌의 간판. 문 앞과 카운터, 엘리베이터 앞 유리문에서 3중으로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독일사람과 철저한 금융인의 면모가 겹쳐졌다.



'The Banker'지가 선정한 총자산기준 세계 2위 은행인 도이치방크의 성공신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최근 민영화를 앞둔 우리나라 산업은행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을 모은 도이치는 요동치는 금융시장에서 다변화와 지속성에 목숨을 걸었다.

◇CIB가 강점? 모르는 말씀!= 기업금융 투자은행(CIB·Corporate & Investment Bank)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도이치방크. 정작 도이치방크는 이런 꼬리표에 동의하지 않는다. '도이치=CIB'라는 공식을 뒤엎는 대신 5가지 핵심사업을 내세웠다.



전세계를 무대로 한 파생상품 거래와 기업금융을 골자로 한 ①글로벌뱅킹(Global Banking)과 ②글로벌시장(Global Markets)은 도이치방크의 전통적인 강점으로 꼽혔던 분야. 하지만 도이치는 과거 IB의 영예를 누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난주 독일내 최대 소매금융 장악력을 자랑하는 포스트방크 지분 30%를 인수하며 강한 의지를 보인 도이치는 이제 ③개인·중소기업거래(Private&Business Clients·PBC)와 ④개인자산관리(Private Wealth Management)를 자신들의 강점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PBC는 특히 아시아와 폴란드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 2분기 때는 여기에서만 30억유로, 상반기에는 총 70억유로의 순이익을 냈다. 더불어 아시아 백만장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친디아(중국+인도) 진출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도이치는 ⑤자산관리(Asset Management)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2005년 중국 화샤은행 지분을 사들인 도이치는 인도에도 8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도이치가 CIB를 벗어나 소매금융에 똑같이 공을 들이기 시작한 건 이미 2~3년 전 얘기다. 도이치 대변인 니더마이어씨는 CIB를 특화하기 위한 도이치의 노력이 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친다. 도이치는 더 이상 CIB에 국한된 은행이 아니란 설명이다.

그는 "어떤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없다. 도이치방크는 5가지 핵심사업 모두에 같은 노력을 쏟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2000년대 초반 닷컴붐 이후 지나친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은 처분하고 강한 분야에만 집중해왔다"고 덧붙였다.

이런 도이치의 '변신'은 한 분야에만 안주할 수 없는 글로벌 금융상황을 잘 반영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도 비슷한 교훈을 남겼다. 도이치는 하나의 큰 열매보다 여러 개의 작은 열매를 택했고 그 열매는 견실하게 익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도이치방크.▲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도이치방크.


◇인수합병(M&A)은 안전하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이치의 M&A 횟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을 터. 긴 역사 속에서 도이치라는 이름을 굳건히 남길 수 있었던 건 'bolt-on'(추가적인) 방식에 근거한 M&A 원칙 덕분이다.

M&A를 크게 완전히 틀을 바꾸는 방식(merger)과 작은 회사를 살짝 얹는 방식(bolt-on)으로 나눈다면 도이치는 후자를 주로 사용해왔다. 이로써 많은 문제가 파생될 수 있는 M&A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니더마이어씨는 "도이치는 이미 사업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나 상품과 관련해 영역을 확장하고 싶을 때 작은 규모의 M&A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2004년 러시아 투자은행 UFG 지분 40%를 인수할 당시 도이치는 이미 러시아에 진출한 상황이었다. 접근성을 따졌을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신중한 판단에서 이뤄진 선택이었다. 지난 7월 네덜란드 ABN 암로(Amro)의 지분을 사들인 것도 같은 맥락.

이런 방식이라면 구조조정도 필수사항은 아니다. 도이치는 지난 몇년 새 수차례의 작은 M&A를 거치고도 직원수가 늘었다. 사람을 자르기보다 더 충원했다. 큰 규모의 인력이동이 없어서 불필요한 분쟁이 줄었고 직원간 융합속도도 빠르다.

그중에는 굵직한 M&A도 있다. 1998년 투자은행으로 이름을 날리던 뱅커스 트러스트(Bankers Trust)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BT는 신흥시장에서 큰 손실을 입은 상태였지만 도이치에겐 절호의 찬스였다. 인수금액은 101억달러로 당시 미국금융기관을 인수하는 외국은행으로선 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유럽은행으로서 꿈의 개척지인 미국에 진출하는 발판이 됐을 뿐 아니라 BT가 보유하던 정보기술과 인프라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는 물론 사전정보 입수와 분명한 인수 목적이 뭔지에 대한 끊임없는 되새김질이 동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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