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디레버리지..이제 헤지펀드 차례?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09.18 14:30
글자크기
환자는 스스로 병을 고치기 위해, 확산을 막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나 워낙 체력이 약하다보니 몸에 부담이 간다. 자체 치료의 단계를 넘어 의사의 급처방이 내려진다. 이런저런 처방에도 불구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보고 의사는 전에 없던 처방을 내린다. 환자는 겨우 생명을 보존한다.

유동성 위기에 몰려 앞날을 잠당할 수 없는 은행들을 두고 이처럼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와 같다는 비유가 나온다.



17일(현지시간)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준(FRB) 의장이 모여 '중환자' AIG의 처리를 논의했다. 그날밤 전례없는 AIG 구제책이 단행됐다.

AIG 처리를 논의한 당국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디레버리지'(차입금 축소)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2002~2006년까지 미국 가계 대출은 연평균 11%나 성장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압도한다. 금융기관들의 대출은 10% 증가했다.

조사기관인 앤드류 헌트 이코노믹스의 추정에 따르면 20년전 월가 투자은행들의 자산은 미국 GDP의 3%에 불과했다. 그러나 저금리, 과도한 차입 등을 바탕으로 이 비중은 지금 GDP의 23%로 불어났다. 엄청난 레버리지(leverage)의 결과다.

경기가 좋아 고용이 보장되고, 주택, 주식이 오르는 상황에서 불어난 대출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택 가격 급락으로 유동성이 증발해버린 지금의 신용경색 상황에서 대출 이자 상환은 이만저만한 큰 부담이 아니다. 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다. 단적으로 GDP의 23%로 불어난 투자은행들의 자산은 대폭 줄어야한다.


이같은 디레버지리의 결과 신용시장이 경색됐고 나아가 실물 경제도 타격을 입고 있다.

디레버리지가 완료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가지가 필요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대출로 샀으나 가격이 급락한 자산을 처분하거나 상각해야하며, 부채를 상환해야한다. 또 투자손실로 인한 자본 손실을 다시 메워야한다.

그러나 이 일은 한꺼번에 나타날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부실 자산은 거래가 잘 안된다는 점이다. 정확한 가격 산정이 힘들다. 그래서 사려는 사람을 찾을 수도 없다.

디레버지의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채상환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면 이는 자산 가격의 추가적인 조정을 야기한다. 그 자산을 보유한 다른 금융기관은 가만히 앉아서 손실을 당해야한다. 손실이 불어나면 주가가 영향을 받는다. 자본 확충을 위한 소중한 루트가 차단되는 것이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교수 시절 이를 금융시장의 악순환(financial accelerator)이라고 보았다. 자산을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자산이 많으면 회생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디레버리지는 2006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부터 시작했다. 모기지 디폴트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디레버리지는 상업용부동산 대출, 자동차 할부대출 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주된 자금조달시장인 단기 채권시장까지 확산됐다.

지난 1분기 금융기관의 대출은 5.1% 증가하는데 그쳤다. 레버리지가 활기를 띠던 당시의 절반 수준이다. 가계 대출은 3.5% 증가했다.

골드만삭스의 잰 해지우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전세계 금융기관은 4080억달러를 상각했다고 분석했다. 조달한 자금은 3670억달러였다.

이는 충분하지 않다. 은행들은 실적발표 때마다 부실 자산 평가가 엄정했고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밝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상각을 단행했다고 고백하며 위기를 가중시켰다. 해지우스는 주거용 모기지 손실만 2012년까지 636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을 1.8%포인트 떨어뜨릴 정도의 규모다. 로버트 글라우버 하바드대 교수는 "전에 없었던 디레버리지가 진행되고 있다. 저축대부조합(S&L) 사태 때보다 더 많은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큰 헤지펀드가 다음 위기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수익률 제고를 위해 가장 흔히 사용한 기법이 레버리지였던 것이다. 이제 은행들은 자금부족에 처해 헤지펀드 대출을 꺼린다. 상환 요구가 거세다. 이미 일부 펀드에서는 환매가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수개월 안에 많은 헤지펀드가 청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경우 투자자산 매각이 일어나고 이는 자산가격의 추가조정을 낳게 될 것이다. 디레버리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