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말입니다. 금융회사 CEO가 감독당국을 칭찬하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열에 아홉은 '규제 때문에 장사 못해 먹겠다' 내지는 '시장은 모른 채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내는 게 보통입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잘나가는 미국 투자은행들도 쓰러지는 판에 국내 증권사들은 손실이 미미하다. 이유는 금융당국이 파생상품에 대해 아주 엄격히 규제해 왔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비율이 150% 미만으로 떨어지면 바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조치를 받게 되고 장외파생상품을 취급하려면 300%, 신탁업을 하려면 200%가 넘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NCR 규제가 너무 지나치다며 항상 볼멘소리를 해 왔습니다.
이런 사례는 최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대표적입니다. 집값의 일정 수준까지만 대출하게 하고 소득을 따져 대출금액을 결정하도록 한 규제인데요. 도입 당시에는 금융회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나친 규제라며 반발했었습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문제로 미국 금융회사가 줄줄이 문을 닫게 되자 국내 금융회사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최근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나섰던 산업은행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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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산은은 리먼 인수를 강력하게 희망했지만 금융위가 강하게 제동을 걸면서 무산됐습니다. 리먼이 파산신청을 한 지금 산은도 금융위에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정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했다면 박수를 받아야겠지만 오비이락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