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AIG 살리고 리먼은 죽인 이유

머니투데이 이규창 기자 2008.09.17 16:10
글자크기
최근 세계증시를 뒤흔들었던 리먼브러더스와 AIG, 미국의 2개 대형 금융기업의 운명이 엇갈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몰린 위기상황은 비슷했지만 AIG는 정부의 자금지원으로 회생하고 리먼은 청산될 처지이다. 둘의 운명이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기관 파산은 예고된 것…베어스턴스가 운좋았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파산위기에 몰린 세계 최대 보험사 AIG에 85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24개월간 자금지원 조건으로 리보 금리에 8.5%포인트 금리를 가산한 이자는 물론 회사 지분도 79.9%를 받는 조건이다.



대출의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규모나 시점 등을 고려할때, 지난 3월 베어스턴스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개입한 사실상의 구제금융인 셈이다.

불과 하루전 리먼브러더스에 대해서는 인수자들이 요구한 채권보증을 거부해 파산의 위기로 내몰았던 미국 정부였다. 리먼이 뉴욕 지방법원에 '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전세계 증시가 패닉에 빠지며 요동쳤다.



직접 인수한 모기지업체 패니매·프레디맥을 비롯해 베어스턴스, AIG 등 파산위기를 맞은 금융기관들을 모두 구제해준 정부가 리먼 문제에서만큼은 비껴서있었다.

핸리 폴슨의 태도변화에 대해 CNN머니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충분한 대비없이 기습을 당한 베어스턴스 때와 달리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파산결정을 내릴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정책연구기관 스탠포드그룹의 자렛 셀버그 애널리스트는 "3월 베어스턴스의 파산위기 때에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규정대로 풀어나나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리먼과 달리 베어스턴스의 파산은 투자자들의 투매와 금융섹터에 큰 충격을 야기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 3월부터 FRB는 월스트리트와 은행에 제공할 충분한 자금을 준비해왔고 이때문에 리먼 악재의 충격파가 예상보다 위력이 적었다고 자렛 셀버그는 말했다. 부실 금융기업의 파산은 당연한 일이고 미처 정부가 대처하기 전에 사고를 터뜨린 베어스턴스가 운이 좋았던 셈이다.

◇美정부 '잘못하면 망한다'…본보기 삼았을 수도
리먼의 파산은 어느 정도 '본보기'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 정부는 구제방식만 달랐을 뿐 베어스턴스, 패니매, 프레디맥 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책임있는 금융기관에 대해 이미 세 곳이나 살려준 터였다.



한국 정부가 IMF때 대기업에 공적자금을 퍼줘 혈세낭비 논란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 또한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를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따라서 리먼은 시장에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유사기업들에게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본보기로 적합했다.

스탠다드 앤 푸어스의 데이비드 위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RB는 모든 기업을 구제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리먼의 경우는 베어스턴스, AIG와 비교했을때 시장에 미칠 충격이 적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베어스턴스와 리먼, 두 회사는 성격이 비슷했지만 파산으로 인해 미칠 영향력은 현저히 차이가 났다. 퓨전IQ의 베리 리톨츠 CEO는 파산으로 부실화될 수 있는 파생상품의 규모가 베어스턴스는 9조달러, 리먼은 그 10분의 1 수준이라고 비교했다.



그는 "베어스턴스의 파산은 전체 금융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리먼은 혼자 망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의 파산은 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전세계 고객들이 보험자산의 안전성을 의심하게 된다면 주식형펀드의 '펀드런'(대규모 환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파장을 몰고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맨든캐피탈어드바이저의 로버트 볼튼은 "CDS(크레딧디폴트스왑) 시장의 주요업체이자 생명, 손해보험과 연금의 거대기업인 AIG의 파산은 전례없는 글로벌 충격파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리먼의 파산은 회사의 주식, 채권투자자들로 그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지선다'의 객관식 문제의 정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