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창>에 관한 추억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2008.09.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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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필자의 중학교 시절인 1960년대의 영화보기는 어린 학생들에겐 만만찮은 문화생활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문화교실- 학생단체를 위한 파격 할인 요금이 적용됨- 계획이 발표되면 모두들 명절을 기다리듯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설레는 첫 장거리 여행, 2학년 봄에 사과꽃이 만발하던 때 우리는 대구를 출발하여 부산, 진해와 충무를 거치는 2박3일의 수학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끝난 뒤 우리 일행이 탄 배가 다리 밑을 지나갈 때, 한쪽이 번쩍 들어 올려진 부산의 영도다리와 그날 저녁 우리가 묵었던 해운대의 여관 바로 앞 극동호텔 측의 배려로 전원이 호텔 뒷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난생 처음 텔레비전을 본 이야기로 흥분된 며칠을 보냈다.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TV보기 섭외를 하셨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분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사명감에 불타는 분이었음에 틀림없다.

선생님의 의도는 너무도 적중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버스와 배에 시달려 파김치가 된 상태임에도 밤늦도록 넋을 잃고 당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모양이 네모나고 다리가 넷 달린 그 기계 앞에 붙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오늘까지 나는 어떤 새로운 발명품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솔직히 그 내용이 영어였는지 우리말이었는지도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목은 <0011나폴레옹 솔로>로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께 경의를 표한다.



이번 문화교실의 제목은 <부러진 창>이었다. 죤 트레이시, 리차드 위드마크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서부극 스타들이 나온 영화였다. 목장주인 아버지와 원주민 여자 사이에 난 아들과 백인 이복형제들의 갈등, 멋진 총잡이와 때로는 주인공보다 더 인상적인 악당과의 결투로 끝나는 정통 서부극을 우리들은 일주일 동안 목이 빠져라 고대했다. 영화를 본 다음날 아침 수업시작 전부터, 하루 종일 내내 또 며칠 동안 간간히 그 영화 이야기들은 그치지 않았다.

필자 또한 종일 그 대화에 빠지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던 없었다. 그 시절에는 친구사이의 친소는 있었지만 '왕따'라는 상황이나 단어조차 없던 때가 아닌가?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필자는 영화의 모든 장면을 생생히 생각해낼 수 있게 되었고, 필자에게는 오늘까지 가장 잊혀지지 않는 한편의 영화가 되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문화교실은 각자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까지 극장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아침에 서두르다가 참가비를 깜빡해 버린 필자는 점심도 잊은 채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날따라 부모님이 모두 계시지 않았고, 결국 시간을 놓쳐버린 필자는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정말 지루한 오후였다.


그 당시 국어사전에는 용돈이란 단어가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들 현실세계에는 그런 용어가 분명히 없었다. 학교는 걸어 다니고, 식사는 도시락이나 집에서 먹고, 허전하면 봄에는 밀서리, 가을에는 콩서리로 해결되었다. 필요한 돈은 일일이 분명한 내용을 설명 해야 했고, 때로는 어려운 설득과정을 거쳐야했다. 집이 먼 친구들은 한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니고 3원 정도 하던 버스비를 모아 시내 2류 송죽극장에서 <하이눈>이나 <황야의 무법자>등을 보면서 존 웨인, 게리 쿠퍼,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의 멋진 폼을 배울 수 있었다.

어느 와인 모임에서 강의 도중 메를로 품종 100%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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