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위기설' 5대 쟁점은

양영권 이상배 이학렬 기자 2008.09.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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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9월 위기설이 단순한 설에서 가능성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섯 가지 논점을 통해 9월 위기설을 집중해부한다.

1, 외인 9월 만기채권 다 회수할까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국인 보유 채권은 6조9000억원으로 국채가 5조7000억원, 통안증권이 1조2000억원이다. 규모도 크지만 전체 만기의 83%인 5조7000억원이 오는 9일과 10일에 집중돼 있어 위기설을 키우고 있다.

외국인이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을 전액 이월(롤오버)하지 않고 회수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9월 위기설'의 단초였다. 이에 대해 정부와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채권 일부를 회수할 가능성이 있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은 지난달 2조6000억원의 채권 순매도에서 1조5000억원의 순매수로 돌아섰다. 일부 채권의 경우 롤오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사진은 한 시중은행의 환율 전광판 사진은 한 시중은행의 환율 전광판


신동수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스왑베이시스(통화스왑-이자율스왑)가 확대되고 대내외 금리차도 커져 외국인의 무위험 재정거래 이익폭이 유지되고 있다"며 "국내 채권에 대한 투자 매력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설사 외국인이 보유 채권을 모두 회수한다 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게 정부 입장이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9월에 만기 도래하는 국채는 (외국인 보유 채권을 포함해) 약 19조원인데 상환자금이 이미 확보돼 있다"며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국고채 발행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채권 매도가 환율 폭등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외국인 채권 투자 대부분은 스왑시장(외화 자금시장)을 통한 금리 재정거래여서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미 외국인은 9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8조7000억원 중 1조7000억원은 국내 금융기관 등에 매각했다.


2, 위기설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나

코스피지수가 2일 장중 한 때 1400을 하회하는 등 주가 급락도 '9월 위기설'에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증시 약세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11월 초 2085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림세다.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글로벌 증시 약세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우리 시장만 유독 자유로울 수는 없다.

중국 상하이 지수는 지난해 10월 고점을 친 뒤 62% 하락했고 홍콩과 대만 증시도 고점 대비 각각 34%, 32% 내려간 상태다. 미국 역시 고점 대비 19% 떨어졌다.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외국인 매도는 전세계 주식 비중을 축소하고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현상의 연장선일 뿐이다.

게다가 미국의 신용 경색으로 대형 투자은행(IB)들은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증시는 그간 많은데다 유동성이 좋아 자금을 회수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엔 일부 대기업들이 대규모 인수·합병(M&A)의 후유증으로 자금악화설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9월 위기설'로 겁먹은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와 하락장에서 한몫 챙기려는 외국인들의 공매도가 주가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주식시장의 기초체력이나 시장 주변 여건을 고려할 때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심리적 쏠림으로 우리 스스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정석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역시 "'9월 위기설'이 가세하면서 오버슈팅(과도한 하락)한 측면이 크다"며 "현재 주식시장은 적정가치보다 10~15% 정도 낮은 상태"라고 말했다.

3,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다고

'9월 위기설'을 키운 근거 가운데 하나가 '외환보유액 부족론'이다.

1년내 외국에 갚아야 할 유동외채는 늘어나는데, '최후의 보루'인 외환보유액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외환보유액 부족론'의 근거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기업과 은행이 갚아야 할 유동외채를 외환보유액과 곧장 연결 지었다는 점에서 무리한 논리라는 지적도 있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전월보다 43억달러 줄어든 2432억달러로 집계됐다.

외환보유 다변화 차원에서 사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채권들의 평가액이 글로벌 강세로 인해 떨어진 탓이 컸다. 여기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해 원/달러 환율 상승을 막는 과정에서 외환보유금의 달러화를 개입 자금으로 사용한 영향도 있었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 비율은 86%였다. 유동외채는 만기 1년 이내의 단기외채와 1년내 만기가 돌아오는 장기외채를 합친 것으로, 1년내 외국에 갚아야 할 빚이다.

만약 채무자인 기업과 은행이 외채를 갚지 못하고, 외채가 일시에 빠져나가고, 이 때 외국인이 가져가는 달러화를 모두 외환보유금으로 충당한다면 외환보유액은 거의 남아나지 않을 수 있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정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에서 적정 외환보유액을 2900억달러로 추산하고,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상태라는 분석을 내놨다.

금융연구원이 잡은 적정 외환보유액은 단기외채, 경상·자본거래를 고려한 3개월 수입 규모,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 규모의 3분의 1을 합친 금액이다. 이는 △단기외채가 모두 만기연장없이 상환 요구를 받고 △3개월간 수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외국인 투자자금의 3분의 1 이상이 금융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가정들은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외채는 대부분 은행이나 기업이 갚아야 할 돈으로, 외환보유금이 아닌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달러화를 통해 우선 상환되는 것"이라며 "외채가 모두 만기연장되지 않고 상환된다는 가정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적정 외환보유액은 3개월치 경상지급액으로,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1400억달러"라며 "이에 비춰보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충분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4, 경기 어렵지만 위기는 아니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국내외 경제 상황도 '9월 위기설'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전망이 어둡기는 하지만 '위기설'을 뒷받침할 정도로 실물경기가 단기적인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다.

국내 경기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물가 급등과 소비 둔화, 기업의 투자 심리 위축 등으로 가파르게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분양 증가로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일부 건설업체들은 자금난을 겪고 있다. 경기동행지수와 경기선행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6개월 연속 동반 하락한 것은 악화된 경제 현실과 전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외화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무역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1년만에 연간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이미 올들어 8월까지 누적 적자만 115억7000만달러에 달했다. 경상수지 역시 올들어 7월까지 누적 78억달러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

국내 수출과 외국인 투자에 결정적인 미국의 경기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여파로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내년 상반기 미국 경기 하강에 따른 파급 효과가 개발도상국에까지 미쳐 수출증가율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장기적인 경기 흐름이 당장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경기가 나빠지고 있지만 유달리 이달 들어 우리 경기에 강한 충격을 줄만한 사태는 없다"며 "실물경기 측면에서 9월 위기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유가가 진정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고 있으며 기업의 현금 흐름상 어려움도 일부에만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급박한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5, 외국 시각 : 문제는 유동성

외국인들은 "코스피 1300 붕괴는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만 정부가 유동성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 가느냐에 시장회복의 열쇠가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JP모간증권은 지금 증시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유동성'에 있다며, 위기는 '절반'을 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 기업, 가계, 금융기관 4곳의 유동성이 관건인데, 환율문제와 인수합병(M&A)에 나섰던 중견그룹사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는 정부와 기업의 유동성이 문제가 되면서 시장이 하락했다는 것. 여기서 가계와 금융기관의 유동성 문제로 번질 경우 주식시장은 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JP모간 관계자는 "주식시장은 유동성의 문제로 부동산가격 하락과 같은 가계와 금융기관의 문제로 번지면 더욱 상황은 악화될 것"이라며 "지금은 정부가 유동성 위기를 어느 선에서 막아주느냐가 시장회복의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일 급락한 뒤 다음날 소폭 반등하는 오늘과 같은 흐름이 약세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급격한 펀드자금 이탈과 같은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중장기적 안목으로 저가에 주식을 사들이는 '스마트 머니'의 등장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정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부의 세금제도개혁에 대해 희망을 표시하는 의견도 나왔다.

올해말 지수 2200~2300선으로 비교적 긍정적 시황관을 가졌던 모간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정부의 세제개혁안이 2009년 기업실적을 4%가량 높일 것이며, 2010년에도 2.5%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모간스탠리는 세제개혁이 장기적으로도 위축된 기업투자를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지만, 대기업 세제 개혁이 지연될 경우 제한적인 효과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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