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녀,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8.09.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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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 Success]박혜린 바이오스마트 대표

젊은 그녀,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는다.”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이다.

적극적인 태도로 결국 일을 되도록 만드는 것이 최고경영자(CEO)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그런 면에서 카드제조회사인 바이오스마트의 박혜린(39) 대표는 CEO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처럼 보였다.



# 타이어
 
박혜린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3년부터 수입차에 필요한 타이어 수입업을 시작했습니다. 카센터를 대상으로 하여 한동안 사업이 참 잘 됐습니다. 그러다 98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환율이 치솟으며 수입업은 치명타를 맞게 됐습니다. 거의 1년간 주문전화 한통이 오지 않았을 정도였죠.”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출로 돈 번 사람이 많아지면 수입차 고객이 늘어날 것이고, 수입 타이어 수요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에서 타이어 매뉴얼과 고객 불만 대처 요령까지 포함한 자세한 판매 교육 자료를 구해 우리 현실에 맞도록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입차 회사에 가서 직접 협상을 했죠. 예상이 적중했고 수입차업체를 대상으로 한 영업이 활기를 띄게 됐습니다. 때마침 카 센터가 프랜차이즈화하면서 대형화됐습니다. 경쟁업체들이 어려워지면서 타이어 재고 물량을 내놓을 때, 전 이 물량을 적극적으로 확보해 이 대형업체를 대상으로 영업을 했고 이 전략도 적중했죠.”
 
전 직원이 모여 타이어를 포장할 정도로 주문물량이 쏟아졌다. “이제 더 이상 타이어 사업에선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동차 업계에 아는 인맥을 통해 한 외국자동차 회사에서 교육연구시설을 국내에 짓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딜러 교육이나 설명회 등을 위한 시설이었죠.



그래서 그 회사를 찾아가 용도에 맞게 교육연구시설을 지어주고 임대료를 받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1년에 하나씩 프로젝트를 해 나갔습니다. 한번 잘 해내니 계속 프로젝트 제의가 들어오더군요. 이후 GE 아우디 등 세계적 기업이 발주하는 프로젝트를 모두 해냈습니다.”

# 카드
 
2006년 박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카드회사인 케이비씨(현 바이오스마트)를 인수한 것. 이듬해 대표로 취임, 경영일선에도 나섰다. “이전까진 순전히 100% 제 돈으로만 사업을 했고, 항상 새로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바꿔 비전이 보이는 기존 회사를 사서 더 잘 키워보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지요.”
 
그런데 왜 하필 경쟁이 치열한 카드제조 회사였을까. “신용카드 학생증 신분증 등 각 용도별 카드가 통합되는 추세여서 장기적인 비전이 약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에겐 자기 지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과 상품만 있으면 전 세계에 카드 시장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우리 회사 직원들의 회사 사랑이 대단한 걸 보면서, 잘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박 대표는 자회사를 통해 사업 영역 확장에도 온 힘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그 가운데 그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곳이 있다. “디지털지노믹스라는 회사인데요, 정부 과제로 DNA 진단칩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엔 조직이나 혈액을 유리 그릇에 놓고 현미경으로 분석했는데, 이 과정을 대체하는 디지털 그릇을 만든 셈이지요. 기존 3일 걸리던 분석 기간을 30분대로 크게 줄였습니다. 9월에 시제품이 나오는데 앞으로 사업전망이 매우 밝습니다.”
 
꿈을 물었다. “우리 회사를 전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내고 싶습니다. 아직까진 먼 꿈이지만, 자꾸 말을 하다보면, 말이 결국 씨가 됩니다. 더 도약할 수 길이 있다면 끝까지 도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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