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설'에 숨죽인 외환당국

머니투데이 이승우 기자 2008.09.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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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는 9월의 첫날,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일일 상승 폭으로 연중 두 번 째인 27원 급등한 달러/원 환율은 1100원대로 올라섰다. 장중에는 30원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이러자 외환 당국이 "환율 급등이 심각하게 우려돼 조치를 강구하겠다" 고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다. 하지만 '약발'은 먹히지 않았다.



시장이 패닉 상태로 간 이후 나온 개입이기도 했고 외환당국이 실제 시장에 판 달러 양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30억달러에 가까운 달러를 쏟아 부으며 공격적으로 개입을 하던 외환당국이 변한 것이 다.

외국계 은행 딜러는 "이날 오후 들어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과 더불어 실개입도 한 것 같은데 30원 급등하는 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개입 강도가 상당히 약했다"고 전했다.



외환당국이 시장 접근 방식을 바꾼 것에 대한 분석은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유가 안정으로 인한 물가 급등세의 진정과 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대외 변수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외환당국자들도 연거푸 언급해왔다.

이와 더불어 '그 가능성이 낮다'며 애써 부인하고 있는 9월 금융위기설에 대한 대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금융 위기 대비하고 있나


외환당국이 공격적인 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9월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한 사전 대비의 측면이 있다. 이달 10일 즈음에 만기가 몰린 외국인들의 채권 투자 자금이 일시에 해외로 유츌될 경우 외화 유동성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 부족으로 환율 폭등세가 재개될 경우를 대비해 실탄(달러)을 든든히 쌓아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정부가 9월 금융위기 가능성이 낮다고 이야기 하지만 거듭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이에 대한 우려를 하 고 있는 것"이라며 "외환당국 역시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 했다.

정 팀장은 "9월 금융 위기가 실현되느냐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외환보유액이 줄어들면 투기세력들의 원화에 대한 공격 강도가 높아질 것"이 라고 내다봤다.

지속적인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그 자체가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외환당국은 자체적으로 실탄을 아끼고 있을 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외국계은행의 국내지점 손비인정도 한도 축소 폐지와 공기업의 해외 차입을 허용하는 등 외화 유동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이미 해왔다. 9월 위기에 차근차근 대비한 것.

하지만 '9월 위기설이 다소 과장된 것일 수 있다'며 외환보유액을 아끼기 위해 환율 급등을 용인하는 것은 '환율 방어 시점을 놓칠 수 있는 실책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외국계 은행 딜러는 "9월 외국인 채권 만기 도래가 6조5000억원인데 외환보유액과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이 자금이 한꺼번에 나간다 해도 위기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에 너무 집중해 최근 며칠 사이 환율 급등을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환율 정책'으로의 회귀인가

외환당국의 개입 강도 낮추기는 '고환율 정책'으로의 회귀라는 해석도 있다.

정권 출범 초기 '최-강 라인'이 줄기차게 외치던 고환율을 통한 수출 위주의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유가 급등세가 잠잠해지면서 외환정책의 핵심이었던 물가가 전월비 마이너스로 전환, 수출 확대를 통한 국제 수지 개선에 정책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경상적자를 메워주는 자본 수지는 불안한 글로벌 금융 시장을 감안, 당분간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지난 6월 반짝 흑자였던 경상수지는 7월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김재은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상수지 적자가 나면 자본수지 흑자로 메워주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자본수지 흑자 전환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고 말했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역시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다시 부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고환율 정책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경상수지 개선이 쉽게 이뤄질 것 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수출이 늘어나는 만큼 수입도 똑같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수지 개선과 무관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

실제 올해 초 환율 급등으로 수출 증가율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반대로 수입증가율은 수출증가율을 넘어서면서 무역수지는 결국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수출·입 증가율 추이ⓒ우리나라 수출·입 증가율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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