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레터]두산의 거짓말과 애널의 배신감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8.09.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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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비밀주의…신뢰 추락이 가장 큰 비용될 것

지난달 18일 대우조선해양 인수 참여를 전격 포기. 지난달 28일 오후 두산인프라코어 (7,760원 ▲40 +0.52%)인터내셔널(DII)과 두산홀딩스 유럽에 10억 달러 규모의 유상증자 추진을 발표.

두산 (225,000원 ▲20,500 +10.02%)그룹이 단 10일 사이에 보인 행보입니다. 두산은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 등을 잇따라 집어 삼키며 두각을 나타냈고, 지난해 한국 기업의 해외 M&A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달러를 들여 미국 밥캣(소형 건설중장비 브랜드)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만큼 M&A 시장에서 두산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M&A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두산이 보여주는 모습에 시장은 "실망 그 자체다"는 반응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신뢰 문제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두산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두산이 얼마나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애널리스트는 두산이 유상증자를 발표하기 전날인 지난달 27일 두산으로 기업 탐방에 나섰습니다. 시장에서 "두산이 밥캣과 관련해 유상증자를 추진하려 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뛴 것입니다. 두산측은 이날 그에게 "괜찮다. 믿어달라. 유상증자 계획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이튿날인 28일 한 방송사와 두산인프라코어와 관련한 방송 촬영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직접 두산을 방문하며 유상증자 가능성 등을 재차 확인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촬영 직전에 다시 두산에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내용으로 방송하려 하는데, 유상증자 없다는 말을 믿어도 되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두산 측은 "괜찮으니까 그대로 진행하라"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촬영하는 도중에 두산 측은 기습적으로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습니다. 이 애널리스트는 '오보'를 내지 않기 위해 2차, 3차로 두산 측에 문의했고, 두산 측은 이에 "계획없다"며 일관되게 거부했는데, 결국 루머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다행히 이번 촬영은 녹화분으로 진행됐고, 아직 방영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두산인프라코어와 관련한 긍정 전망 등을 삭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애널리스트는 허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며 "앞으로 두산의 입장과 발표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두산측은 지난 7월 기업설명회(IR) 발표시 밥캣 실적을 발표하면서 "괜찮다"고 강조했습니다. 2분기 실적도 좋게 나왔고, 3·4분기 실적도 양호할 것이라고 자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채 한 달 만에 2분기 실적 전망이 급락했고 3·4분기 실적도 예상보다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수정했습니다. 그 사이 애널리스트나 시장에 어떤 언질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측은 지난달 29일 오후 긴급 IR를 갖고 유상증자에 대한 우려와 오해를 잠재우기에 나섰습니다. 특히 밥캣의 향후 사업전망과 관련해 "지난 20년간 볼 수 없었던 불황이지만, 지금껏 (밥캣의 영업활동과 관련한) 불황이 2년 이상 유지된 적은 없었다"는 '경험칙'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장평가는 냉랭합니다. 참석했던 애널리스트들은 "밥캣의 제품 시장이 성장기를 지나 지금은 유지 또는 정체기를 맞이했고, 미국과 유럽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는 상황에 이런 낙관론이 먹혀들 리 없다"고 비판 일색입니다.

시장에서는 "이제 두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판단이 널리 퍼졌고, 결국 두산그룹주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은 1일 오전에도 하한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두산의 사례는 '시장 신뢰를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다'는 격언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M&A의 절대강자'에서 '양치기소년'으로 전락하는 모습입니다. 그동안 '미래를 위한 성장전략'으로 여겨지던 M&A 성과가 그룹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는 핵심 변수가 돼 버렸습니다.

밥캣 위기는 두산 입장에서 큰 어려움 없이 극복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번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신뢰가 이번에 두산이 치러야 할 가장 큰 비용이 될지 모릅니다. 손바닥으로 잠시나마 하늘을 덮으려 했던 과오는 두고두고 두산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애석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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