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포인트]'두산쇼크'에 좌절된 반등

머니투데이 오승주 기자 2008.08.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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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弗 증자소식에 주가 급락… 악화된 투심에 '설상가상'

이번엔 두산그룹 쇼크가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미국증시의 급등과 국제유가 하락,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 확인 등 호재에도 불구하고 '두산쇼크'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다.

일본증시가 1.5% 이상 급등하고, 대만증시도 1% 가까이 오르는 등 아시아 주요증시의 출발이 산뜻함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시장은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국내증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두산그룹 관련주다.

29일 오전 11시30분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7,760원 ▲40 +0.52%)는 하한가를 기록중이다. 지난해 8월16일 이후 1년여만이다.



두산 (225,000원 ▲20,500 +10.02%)도 동반 하한가다. 지난 1월30일 이후 8개월만이다. 이와 함께 두산우 (88,200원 ▲3,300 +3.89%)선주도 하한가 행렬에 동참중이다.

이밖에 두산중공업 (19,260원 ▼70 -0.36%)도 하한가에 밀착돼 있다.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두산그룹 관련주 7개 모두가 내림세다. 7개 가운데 하한가를 나타내는 종목이 3개나 된다.

두산그룹주의 급락 배경에는 전날 발표된 공시에 있다.


내용은 이렇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은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가 밥캣을 인수하면서 설립한 해외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 인터내셔널(DII·미국)과 두산 홀딩스 유럽(DHEL·유럽)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28일 밝혔다. 규모는 총 10억달러.

이번 증자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5억1900만달러(DII 2억5070만달러, DHEL 2억6830만달러), 두산엔진이 4억8100만달러(DII 2억3230만달러, DHEL 2억4870만달러)를 출자한다.

전문가들은 두산그룹의 해외 자회사에 대한 유상증자 참여가 시장에서 극도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로 거액을 들여 인수한 밥캣에 대한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붇기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밥캣은 지난해 두산그룹이 인수한 소형 건설장비 업체다. 미국 잉거솔랜드의 자회사로 인수당시 지불한 49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한화 약 4.5조원)는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금액으로는 최대다.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시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로 번질 공포에서 비롯된다.

양희준 미래에셋증권 (20,500원 ▼150 -0.7%) 연구원은 "밥캣의 실적 부진은 차입약관으로 인해 곧바로 재무위험으로 이어져 두산그룹이 증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미와 유럽의 경기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져 EBITDA가 더 감소할 경우 추가적인 증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밥캣 인수시 투자에 참가한 주체를 상대로 EBITDA의 7배 이내에서 차입금 허락이 가능한 조건으로 인수했다. 이를 통해 산업은행이 중개한 투자 주체들로부터 29억달러를 빌려 밥캣을 사들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현금흐름을 통한 기업가치 창출력을 의미하는 EBITDA는 밥캣의 경우 올해 3억1000만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입 약관상 3억1000만달러의 7배인 21억달러까지 차입이 허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일단 빌린 29억달러에서 21억달러를 뺀 8억달러는 곧 투자자들에게 토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두산그룹이 이번 증자를 감행한 것으로 증권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국내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8억달러(약 8800억원)에 달하는 이번 증자는 두산에 부담이다.

게다가 유럽 등 글로벌 건설경기도 침체국면을 맞는 와중에 밥캣이 두드러진 실적개선을 보이지 못하면, 두산이 또다시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그룹전체의 유동성 위기가 엄습할 것이라는 공포가 두산그룹주의 동반 하락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전문가들을 지적한다.

양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두산그룹에 대한 불신과 배신도 주가 약세에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밥캣에 대한 우려가 불거질 때마다 두산그룹은 '문제없다'는 식으로 일관했으나, 돈줄을 끌어대기 위한 유상증자를 감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장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양 연구원의 분석이다.

해외증권사들도 이번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는 내비쳤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이번 두산 유상증자에 대해 "부정적 뉴스"로 평가하고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노무라증권은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에 대한 추가증자 필요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올해와 내년뿐 아니라 2010년까지도 두산인프라코어에 도전과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2010년까지 밥캣에 자금을 '밑빠진 독 물붇기'식으로 쏟아부을 가능성도 빼놓지 않은 셈이다.

가뜩이나 움츠러든 투자심리에 불을 지르는 소리다.

하지만 이날 두산그룹주 약세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밥캣과 직접적인 관련 당사자로 지목됐기 때문에 주가도 당분간 약세를 지속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다만 두산중공업이나 두산은 한발짝 물러서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심리불안에 따른 과매도 상태라는 점이 강조됐다.

옥효원 메리츠증권 (6,100원 ▼200 -3.17%) 연구원은 "이번 증자 공시는 해외 자회사 추가출자에 대한 부담과 DII의 실적 우려를 부각시켜 추가 조정이 가능하다"면서도 "출자가 실질적으로 두산이나 두산중공업 등 계열사의 손익이나 재무적 측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혼돈을 겪은 증시는 또다시 두산그룹 위기에 고통을 받는 모습이다. 금리가 오르고 글로벌 경기침체 와중에 대규모 차입을 통해 기업을 키워온 그룹들이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HD현대인프라코어 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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