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값이 금값..젯상 차릴 서민 허리 '휘청'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8.09.0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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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들썩이는 추석 물가

예년 같으면 한 창 들떠 있을 때다.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방학같이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지 궁리하거나 고향방문과 가족 만남의 기대감으로 설레여야 정상이다. 하루에도 달력을 몇 번이나 보면서 날짜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재미도 쏠쏠해지는 시기다. 그러나 올해 추석을 기다리는 풍경은 예년만큼 즐겁지 않아 보인다. 서울에 사는 유강현(46·가명) 씨 가족의 경우를 보자.

직장인 유 씨 가족은 추석 때마다 경상남도 김해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뵙는다. 8시간이 넘는 고된 귀향길이지만 오랜만에 찾는 고향 생각에 도로 위에서 생기는 짜증은 견딜만 하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친지와 형제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다.



그러나 유 씨는 올해 추석이 부담스럽다. 추석연휴가 3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은 일요일이다. 전·후로 하루씩 쉬기 때문에 토~월 3일 안에 고향에 다녀와야 한다. 하루 정도는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데 고향에 다녀오면 이를 포기해야 한다.

짧은 연휴로 교통체증까지 예년보다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유 씨는 ‘고향앞으로’ 계획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추석이면 으레 가을방학으로 알았던 유 씨의 자녀들도 입이 나왔다. 올 추석 연휴는 토·일요일을 제외하면 ‘겨우 하루’ 더 쉬는 것 뿐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자칫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못 뵙고 사촌형제들과도 어울릴 시간이 거의 없을 것같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사람은 유 씨의 아내다. 추석 음식장만의 공포에서 홀가분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만약 유 씨가 명절 때 귀향길에 오르지 않는다면 서울 집에서 조촐하게 과일이나 먹으면서 보낼 요량이다.

그녀는 추석 연휴 선물과 과일을 살피러 대형 마트에 들렀다. 기쁨도 잠시, 뜻하지 않는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남편의 거래처 직원에게 선물할 과일과 시댁에 보낼 고기를 둘러보던 유 씨의 아내는 아직도 많이 남은 세제와 괜한 주방용품만 사들고 집에 와야 했다. 추석을 앞두고 과일을 중심으로 너무나 올라버린 가격 때문이다.


◆ 과일값 더 오른다

올 추석 상품 가운데 가격 상승의 '빅3'는 돼지고기와 밀가루, 과일이다. 지난 8월 22일 농협유통이 농림수산식품부에 보고한 2008년 한가위 물가안정대책에 따르면 예년에 비해 돼지고기는 50%가량 가격이 올랐다. 추석 때 특히 많이 들어가는 밀가루는 1kg에 1700원으로 91%나 급등했다.

과일는 사과 한 상자(홍옥 13개 이하 들이 5kg)의 값이 4만1000원으로 지난해보다 10.8%, 배 한 상자(신고 10개 이하 들이 7.5kg)은 3만2000원으로 8.5% 뛰었다. 지금은 지난해에 비해 10% 내외의 상승이지만 추석 성수기로 갈수록 더 오를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ERI)은 9월 과일 관측월보에서 추석 성수기에는 사과와 배 등 차례상에 올릴 과일들이 현재보다 더 높게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출하시기가 9월인 홍로의 경우 공급량이 3% 감소함에 따라 지난해 추석 성수기의 평균가인 3만9000원에서 올해는 4만5000~5만원 수준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했다. 예년보다 15~28% 높은 가격이다.

배도 9월 신고 출하가 지난해보다 줄면서 지난해 평균 가격인 3만4000원(햇배 15kg 기준)에서 3000~6000원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단감은 10% 이상의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는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을 4인 가족 기준 16만6100원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9.4% 오른 것이다. 하나로클럽도 추석 20일 전후의 차례상 식재료 가격을 조사한 결과 예년에 비해 8.9%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적으로 생산량이 감소한 과일은 값이 오르는 반면 조업량이 증가한 수산물은 값이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과일값이 금값..젯상 차릴 서민 허리 '휘청'


◆ 사과 찾아 산 넘고 물 건너는 유통업체

추석을 앞두고 과일 가격이 계속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예년보다 올해 추석이 열흘 이상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실이 출하 직전까지 일조량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아직 탐스럽게 여물지 않으면서 공급량이 크게 줄었다.

이른 추석의 여파로 전체 사과 공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부사는 9월 말부터 수확하기 때문에 올 추석에 구경하기 힘들 전망이다. 다행히 홍로와 조생종은 8월 말~9월 초부터 수확이 가능하지만 전체 사과물량의 20% 미만이어서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홍로의 경우 주요 산지인 경북 안동, 영주, 의성 등지에서 개화 시점에 서리와 냉해 피해를 보면서 생산량이 3% 줄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서울시 유통 관계자는 “사과나 배는 마른 장마로 인해 당도가 높지만 성숙기의 수분 부족으로 과실 크기가 작은 편”이라며 “제수용 수요가 높은 큰 과일의 비중이 줄어 특상품 위주의 강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는 전국을 발로 뛰며 재배시기와 가격 맞추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좋은 품질의 사과를 공수하기 위해 산지를 돌며 직거래를 늘리는 것도 부사의 수확시기가 예년과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배는 올해 작황이 좋은 편이지만 9월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6%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통업체들은 충남 아산과 경기 평택 등 대표적인 산지에서 직거래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질 좋은 물건의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르자 과일 무게를 속여 파는 악덕 중개업자도 생겨났다. 이들은 대량으로 과일을 구입한 뒤 포장에서 한 두개씩 빼내거나 저급 제품을 끼워넣는 수법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물이나 제수용품용 포장 과일은 직접 무게를 재보지 않는데다 선물로 받은 제품을 품질이 나쁘다고 어필하는 고객도 거의 없어 속여 팔기가 쉽다.

업계 관계자들은 무게를 속여 팔거나 섞어 파는 제품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번거럽더라도 무게를 확인하고 꼼꼼하게 물건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 현지에서는 고단가 유지, 물동량 조절

“인터넷 보편화로 농민이 영리해졌다”. 과일 등을 재배하는 농민을 두고 현지 직배송거래자들이 하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출하시기를 당겨 급한 돈을 챙기는데 급급했지만 지금은 정보망이 공개되면서 농민들이 직접 단가를 조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일 농수산물의 거래내역을 온라인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시기에 맞춰 좋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점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중간상인이 산지에서 직접 구매를 한다 하더라도 예전만큼 싸지 않을뿐더러 원하는 시기에 제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됐다.

최근 사과 등 제수용 과일 수요가 늘어나자 농민들은 과실 밑에 반사광을 깔아 출하시기를 앞당기는가 하면 낙과나 조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어조치에 분주하다.

유통업체들도 좋은 품질의 제품에 대해서는 20~30% 가격을 더 책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즙이 많고 맛이 뛰어난 과일이라 하더라도 꿰어야 보배다. 한 유통업체는 현지에서 방금 딴 듯한 신선도와 상태 보관을 위해 선도유지제를 넣은 포장용기를 준비해놓고 과실을 기다리고 있다.

서일호 GS리테일 홍보과장은 "사과의 경우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특정화학물질 흡수용 수포제를 선물세트 안에 넣어 판매할 예정"이라며 "올해 추석 사과는 저장기간이 짧은 홍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물량 확보만 하고 포장시점을 최대한 늦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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