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효자 '배추의 추억'...미끼도 진화한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8.09.0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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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지갑 여는 달콤한 미끼

"자~ 보세요. 허수아비가 저절로 일어납니다.", "오~ 신기하다!", "어떻게 된 거야?"

숨죽이며 지켜보던 구경꾼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누워있다 저절로 일어나는 허수아비 인형, 조그만 도구 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던 동전들, 어떤 힘을 가하지도 않았는데 튀어 오르는 성냥개비, 손가락 하나로 뒤바뀐 주사위의 눈 등 약장수의 마술 아이템은 무궁무진했다.

20여년 전 강남역에서 테헤란로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좌판을 벌여놓고 물건을 파는 약장수를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좌판위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병속의 담뱃갑과 반짝이는 동전들이 자랑스레 자리 잡았다.



약장수는 코미디언을 뺨치는 개그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드는 마술을 상황에 맞게 보여주며 구경꾼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유치한 개그와 간단한 눈속임이었지만 당시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최고의 연예인이었다.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약장수의 마술과 입담이었지만 그의 원맨쇼가 끝나면 몇사람씩은 금속제품 광내는 약을 쥐어들곤 했다.



20여년 전 약장수가 있던 곳에 시원한 복장을 한 예쁜 아가씨들이 음악을 크게 틀며 핸드폰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녀들 앞에는 '공짜', '약정가입 없습니다'라는 큼지막한 글귀와 함께 여러 대의 휴대전화가 전시돼 있다.

무심코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발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보였다. 공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제품설명을 한참 듣던 남자는 대신 최신 기종을 선택했다.

그는 공짜 휴대전화의 제품이 몇년 전 모델이고 디자인도 촌스러워 내친김에 무선랜이 내장돼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최신 휴대전화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화하는 미끼전략, 낚아라

미끼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낚시 끝에 꿰는 물고기의 먹이'라는 뜻 외에 어떤 목적을 위해 대상을 꾀어내기 위한 물건이나 수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이 뜻처럼 판매자는 약간의 노력이나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미끼를 던지며 소비자에게 물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과거 약장수의 마술이나 현재 공짜로 포장된 휴대폰 모두 소비자 입장에서는 미끼인 셈이다.

현재까지 미끼마케팅이 가장 활성화 된 분야는 생활필수품이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에서는 미끼상품을 이용해 소비자의 흡입력을 증대시켜 전체 매출을 늘리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김종선 경원대 교수의 책 <길거리 경제>에 따르면 1990년대 백화점이나 할인마트는 요일별 특가상품전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특히 해태유통(현 킴스클럽마트)은 월요일에는 채소, 화요일에는 달걀, 수요일에는 건어물, 목요일에는 생선, 금요일에는 과일, 토요일에는 정육을 선정해 다른 요일에 비해 20~30% 싸게 판매했다. 이 유통업체는 주부의 식단을 고려해 일~목요일에는 도시락 반찬 위주로, 금~토요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먹을 수 있는 제품 위주로 할인전략을 세워 눈길을 끌었다.

기업의 마케팅 측면에서 미끼는 매출효과에 유용한 수단이 된다. 1997년 '배추전쟁'으로 표현되는 유명 백화점의 사례는 미끼상품이라는 용어를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각 백화점마다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절반에 가까운 파격가로 판매해 화제가 됐다. 백화점들은 원가 이하의 가격 판매로 배추 판매에서 손실을 입었지만 다른 상품 판매를 통해 더 큰 수익을 올렸다.

미끼상품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국적 기업인 맥도날드의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일부 햄버거의 초저가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다. 300원, 1000원으로 강조되던 이 회사의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는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패스트푸드업계는 미끼만 먹고 사라지는 알뜰소비족의 비율이 높아 정작 이 회사의 매출증대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온라인 쇼핑몰 최고 인기

'2008년 가을 신상품, 최후의 가격 2900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포츠 브랜드 의류의 파격적인 가격이다. 인터넷 쇼핑몰은 광고 메일을 통해 이 같은 기획상품을 알림으로써 소비자의 손가락을 갈등하게 만든다.

일단 인터넷 쇼핑몰에 발을 담그는 순간 소비자는 이곳을 쉽게 빠져나가기 힘들다. 마진을 남기는 다른 상품이 미끼상품 하단에 배치되며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잡화나 패션상품으로 낚인 소비자들은 가전제품이나 전자제품 등 비교적 가격대가 높은 상품들의 유혹으로 옮겨간다.

롯데아이몰은 최근 집까지 배달해주는 260원짜리 생수를 10일 동안 4000개나 팔아치웠다. 수익보다 일종의 홍보 마케팅에 무게를 둔 전략이다. '오픈마켓시장에서 일단 방문한 소비자는 여러 물건을 주문하는 성향'을 노린 기획이다.

올여름 오픈마켓시장은 미끼상품을 총동원한 묶음형 폭탄세일이 트렌드가 됐다. 11번가는 지난 8월15일까지 여름인기상품을 최대 91%까지 할인해 판매했다. 생필품에서 생활가전, 패션아이템 등 여름을 겨냥한 상품이 주를 이뤘다. 옥션도 유효기간이 3일에서 1개월 남은 땡처리 항공권을 최고 80% 할인된 가격으로 팔아 올 초 대비 30%가량의 매출 증가를 올렸다.

한 온라인 쇼핑몰 마케팅 담당자는 "소비자의 눈길을 잡을 수 있는 값싸고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전면 배치하고 홍보에 힘쓰면서 다른 상품의 판매를 유도하는 전략이 오픈마켓 시장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소비패턴을 분석한 결과 값싼 상품으로 유인된 소비자가 고가 제품의 구매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 회사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미끼상품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끼메뉴로 지갑을 열다

불경기에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음식점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미끼상품을 이용한 고객 유치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급성장한 김밥천국의 경우 1000원짜리 김밥으로 전국의 분식점업계를 강타한 것이 좋은 예다.

몇해 전 유행했던 한 막걸리 전문점은 3000원짜리 김치전, 부추전을 미끼상품으로 고객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 고깃집의 2000원짜리 김치말이국수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먹는 냉면 대신 원가가 저렴한 김치말이국수, 골뱅이비빔국수, 잔치국수 등을 값싸게 제공해 만족감을 배가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들은 월등한 가격 경쟁력을 가진 메뉴로 인해 자연스레 홍보되고 주력 메뉴를 개발해 수익을 창출하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미끼상품을 통한 홍보에 열을 올리다 보면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장정용 한국창업경제연구소 대표는 "미끼상품이 고객을 유치하거나 고객에게 만족감을 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주 메뉴의 매출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면 매장의 수익률 저하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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