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KDB, Why Now

더벨 현상경 기자 2008.08.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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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IB 인수시대]②2~3년뒤 IB매물 보장없어...MB의 용단 필요

이 기사는 08월26일(10:0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한국 금융산업 글로벌화의 필요성은 민관할 것 없이 합의가 도출된 당위명제다. 풍부한 노하우와 경험을 보유한 금융인력,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글로벌 지점의 확보가 필요조건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IB 인수가 목표지점에 도달할 '최단거리'라는 결론은 이미 오래전에 내려졌다. 단지 '어떻게'(how)라는 문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이로 인한 글로벌IB 부실화, 몸값하락은 한국에게 'how'의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했다.



Why KDB?

수백년 전통의 글로벌IB 인수가 가능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자금력은 물론, 아시아권을 대변할 정도의 명성(Reputation)은 보유하고 있어야 협상테이블에 앉아 공격적인 제안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

현재 국내 민간 금융사에는 마땅한 '선수'가 없다. 국내 1위인 국민은행이 세계100대 은행(2007년말 기본자본 기준)에서 세계 56위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고 증권업계는 더 말할 것도 없는 상황. 결국 국부펀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투자공사(KIC)나 산업은행(KDB), 글로벌 마켓에서 큰손 대접 받는 국민연금(NPS)이 남는다. 한국의 리먼브러더스 인수협상 역시 초기 단계부터 이들의 귀와 손을 거쳐 진행됐다.


산업은행에게는 다른 기관과 차별화된 강점이 있었다. KIC나 국민연금이 단순 재무적 투자자(FI)에 머물수 밖에 없다는 것에 비해 전략적 투자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 이는 민영화 이후 살 길을 투자은행에서 찾아야 한다는 산은의 정체성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었다. 높은 업무 유사성이나 산업에 대한 이해도는 산은에 가능성을 더했다.

특히 국책은행이란 타이틀이 주는 신뢰도와 명성도 있었다.

외국계IB의 한 관계자는 "IB인력들은 글로벌 컴퍼니에 근무한다는 자부심과 명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의 소규모 은행이나 민간증권사가 세계적인 IB의 주주가 된다고 하면 옐로우 거버넌스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력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기간산업 보호를 원하는 해외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민간 금융회사의 섣부른 진입은 꺼려진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은행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활용 가능한 유일한 대안으로 부각됐다.



Why not KDB?

하지만 최상의 시기와 실현가능한 시나리오가 결합된 산은의 리먼브러더스 인수시도는 결국 꽃을 피우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다. 매각가격 부분도 있었지만 인수 후 리스크에 대한 부담감이 원인으로 평가됐다.

산업은행 내부적으로도 리먼브러더스 인수협상과정에서 추가적인 손실발생 가능성과 이에 대한 책임문제가 부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후 추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나타나는 데 더해 단기 투자수익마저 부진할 경우 누구가 이를 책임질 것이냐 하는 문제다.

업계에서도 이 같은 산은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IB관계자는 "KIC의 설립과정과 현재의 위치를 보면 산은의 고민을 알 수 있다"고 풀이했다. 한국판 싱가포르투자청(GIC)을 꿈꾸던 KIC는 2004년말 GIC가 9억달러를 들여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사들이고 있을 때조차 외환보유액 손실 우려에 대한 여야간 의견충돌로 설립법안마저 국회의 손을 제때 거치지 못했다.

간신히 관계기관 합의를 이끌어 200억달러 종잣돈을 받아낸 게 이듬해 중순. 온갖 우여곡절로 첫 투자를 일궈낸 게 설립 후 1년4개월이 지난 2006년말 외채투자. 그리고 올 초에서야 공격적인 투자로 꼽히는 메릴린치 20억달러규모 지분인수가 이뤄졌다. 이 투자는 메릴린치 주가가 반토막 나면서 잘못된 투자라는 몰매를 맞고 있다.

정책당국은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입을 통해 이런 우려감을 공식 표명했다. 전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글로벌IB인수에서)공공기관이 주체가 되는건 재무적 리스크 뿐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리스크까지 포함해 부담스럽다"고까지 밝혔다. 세금으로 리스크 테이킹을 하기 힘들다는 공무원(?)적인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셈.

심지어 전 위원장은 "앞으로 추가적으로 인수를 검토할 때 어떤 형태의 컨소시엄이 구성돼도 정부산하기관이 부담을 안는 주체가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향후 가능성까지 막아놓았다.

국책은행이란 타이틀은 글로벌IB 인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지만 되레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것. 결국 산업은행이 글로벌IB인수라는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영화부터 서둘러 달성하는 수밖에 없다.

Now or Never

문제는 시기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리먼 뿐만 아니라 메릴린치, UBS얘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글로벌 IB인수의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바로 지금 규정을 손봐주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년이 걸릴 민영화부터 실시하느라 투자기회를 뒤로 미룰 경우 그때도 지금과 같은 IB매물이 존재할지 알 수 없다. 결국 지금이 바로 유일한 기회(now or never)란 의미다.

게다가 민영화 이후 산은지주회사(KDBHC)가 추진하는 바가 글로벌 IB육성이라면 '닭'이냐 '달걀'이냐에 얽매이지 말고 기회가 있을때 사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과감한 리스크 감내로 위기를 기회로 삼은 해외 국부펀드의 투자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평가도 많다. 역시 메릴린치에 투자한 싱가포르 테마섹은 50억달러 투자금의 상당액을 손실로 기록했음에도 불구, 되레 투자확대계획을 제시했다. 자금난을 겪는 글로벌IB들이 시장의 부침을 견뎌낸 뒤면 얼마든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한다는 테마섹의 힘은 과거의 고수익도 있지만 비록 단기손실을 보더라도 투자결정에 대한 신뢰를 확인해주는 정부차원의 과감한 지지에서 비롯된다. 테마섹의 수익률만 원하고 리스크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경우 글로벌IB 인수시대는 '캐치프레이즈'로 끝날 공산이 높다.

결국 한국금융의 글로벌IB 인수라는 꿈을 이루려면 정부의 리스크테이킹을 담보해주는 MB의 과감한 용단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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