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복병, 잠재된 신용 리스크

더벨 이현중 기자 2008.08.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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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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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08월25일(14:21)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지난 3월 달러/원의 장기 하락 추세선을 상향 돌파하며 환율 급등의 빌미를 제공했던 변수는 글로벌 신용위기였다. 당시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美달러가 주요 통화 뿐 아니라 이머징 통화에 대해 급락을 하던 시점에 원화는 나홀로 약세를 시현했다. 그 이후의 환율 상승은 유가 급등이 이끌었다. 국제유가가 150달러에 근접하는 폭등세를 나타내면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였고,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통화가 특히 약세를 보였다.



원화는 인도 루피, 필리핀 페소와 함께 유가 상승에 취약한 통화로 분류되었다. 이후 글로벌 경기 둔화 확산 우려로 유가가 급락하고 작년 9월 FRB 금리 인하 이후 초약세를 나타내던 美달러도 가파르게 상승하였는데, 달러/원 환율은 유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에 영향을 받아 올 들어 세 번째로 1050원대로 상승한 뒤 지난 주말 1060원대로 올라서는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올 들어 당국의 강력한 개입 이외에는 환율 하락 재료가 거의 없었고, 특히 지난 6~7월 200억달러를 상회하는 외환당국의 대규모 개입 이후 당국의 개입 변수마저 환율 상승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임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번 칼럼에서 당국이 유가와의 위험한 게임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유가 급락보다 달러 강세 재료, 신용 악화 등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당국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미 전 고점을 넘어선 환율의 다음 향방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이번 유가 급락 이후의 환율의 재상승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유가가 급락하면서 환율 하락이 예상되었으나 유럽, 일본을 위시한 미국 여타 지역 경기 하강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오히려 우리나라 수출에 암운을 드리웠고, 유가 급락과 동시에 진행된 美달러의 급등이 달러/원 환율에도 영향을 미쳐 환율은 1020원의 단기 저항선을 뚫고 올라갔다. 유가 급락으로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던 당국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시츄이에션(?)이 아닐 수 없다.

애초 당국의 환시장 개입의 가장 큰 목표가 물가안정이었는데, 유가 급락으로 외환시장 개입 명분이 다소 약화되었고, 글로벌 달러 강세에 의한 환율 상승에 홀로 맞서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며, 달러 강세로 외환보유액의 평가액 감소가 예상되는 데다, 무엇보다도 9월 외화유동성 위기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허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당국으로부터 환율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향후 국내 외환시장이 지난 2000년말의 흐름을 재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00년에는 환율이 8개월 동안 40원 범위 내에 갇혀 있다가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에 따른 달러/엔의 110엔 상향 돌파를 계기로 달러/원도 1140원의 저항선을 뚫고 불과 6개월 만에 1360원까지 급등한 바 있다.


당시 IT 버블 붕괴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가 다른 나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달러 강세 현상이 나타났었다. 우리나라 역시 수출에 타격을 입으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고, 현대건설의 1차 부도로 인한 신용리스크 부각이 글로벌 달러 강세와 맞물려 환율의 급등을 촉발했고, 외환위기 이후 환율이 1100원 수준까지 하락하는 과정에서 수출업체의 적극적인 환 헤지는 환율의 상승 탄력을 더욱 높이는 재료로 작용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당시의 상황과 현재를 비교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인해 뒤집힌 외환 수급, 세계 경기 동반 둔화로 향후 수출 부진 가능성, 외환시장 내 대규모 달러 매도 헤지 포지션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글로벌 신용 경색 상황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에 노출된 금액이 매우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신용위기에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에 2005년 4분기 이래 처음으로 금융권의 단기 외화차입금이 감소하였는데, 조선업 수주 둔화 및 수출업체들의 헤지비율 낮추기, 해외펀드 신규 설정 급감 및 자산운용사들의 헤지비율 하향 조정 등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단기외채는 소폭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금융기관들도 작년 8월, 11월 및 올해 3월 외화유동성 확보에 애를 먹은 만큼 이에 대한 대비를 해 나가고 있으나 문제는 2200억달러라는 절대적으로 큰 규모의 유동외채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신용시장이 앞으로 상당 기간 정상화되기 힘들다는 데 있다.

9월 외화유동성 위기설 역시 이미 노출된 재료라는 점, 외국인이 한꺼번에 빠져 나갈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점에서는 '설(說)'에 그칠 공산이 있지만 외부 신용 상황을 장담할 수 없어 안심하기 이르다.

유동외채를 제외한 금액을 가용외환보유액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보나, 글로벌 신용위기 악화 가능성과 유가의 재급등 가능성을 고려할 때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재원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 원화 약세 베팅을 더욱 용이하게 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지난 2000년 말의 환율 급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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