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세계의 공장'서 이제 '세계의 시장'으로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8.2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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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베이징, 중국 경제는 어디로②]

100년을 기다려온 올림픽, 그 와중에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주가 폭락, 부동산 가격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 올림픽 후 중국의 급성장에 제동이 걸릴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이 '생산대국'에서 '소비대국'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 만큼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24일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물가수준을 고려한 구매력지수(PPP) 기준으로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5300달러였다. 우리나라(2만4800달러)의 5분의 1 정도다. 세계은행(WB)은 중국의 PPP 기준 1인당 GDP가 지난 2004년 이미 5400달러를 넘어 올해는 6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경제학적으로 PPP 기준 1인당 GDP 5000달러는 소비시장 팽창과 소비수준 고급화가 본격화되는 분수령이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 중반, 러시아의 2000년대 초반이 그랬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지난 7월 중국의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23%로 1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가 승용차와 고급 휴대폰의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리총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중국 전문 펀드매니저는 "중국의 소비시장이 성장할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중국의 수출 기여도는 다소 주춤할 수 있지만 내수 성장 기여도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소비대국화'는 우리나라에게 기회 그 자체다. 중국 소비시장의 변화를 5개 키워드를 통해 정리해본다.

◇ '신쓰지엔'(新四件)= 요즘 중국인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4가지 물건을 일컫는 말이 '신쓰지엔'이다. 자동차, 집, 휴대폰, 개인용 컴퓨터(PC)가 여기 해당한다.


이 중 자동차의 경우 향후 소비 급증 가능성이 다분하다. 중국의 경우 이미 자동차 보급화(모터라이제이션)가 본격화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1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2.3대였던 1984년 이후 자동차 구입이 폭발적으로 증가, 1996년에는 100명당 20.8대를 갖게 됐다. 지난 2004년 도시가구를 기준으로 중국의 1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2.1대였으며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휴대폰의 경우도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의 직장인들에게는 이미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향후 교체 수요까지 가세할 경우 큰 폭의 소비 증가세가 예상된다. PC는 도시가구만 봐도 보급률이 아직 20% 수준에 머물러 있어 향후 추가로 구매할 여지가 충분한다.



특이한 것은 중국에서 고급 TV의 구매는 크게 늘어도 고급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의 소비는 부진하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부유층들이 부엌을 '가정부의 공간'으로 인식해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을 굳이 고급으로 채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신용카드= 소비시장의 기폭제인 신용카드 부문에서도 큰 성장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기준으로 중국의 신용카드 소지자 수는 3100만명으로 전체 도시인구의 5.4%에 불과하다. 신용카드가 추가로 보급될 여지가 많은 셈이다. 비자(VISA) 카드사는 중국의 신용카드 사용자가 2010년쯤 약 2억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이미 신용카드를 가진 젊은층을 중심으로 카드 사용액이 급증하고 있다. 세계경제전망 연구기관 컨센서스 이코노믹스(CEIC)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중국의 소비신용대출액은 3조920억위안으로 전년 같은 달(2조3010억위안) 대비 34% 늘었다. 그러나 중국내 고객정보 유출 우려 등이 여전히 신용카드 보급화의 걸림돌로 남아있어 이에 대한 당국의 대응이 변수로 지목된다.



◇ '소황제'(小皇帝)와 '빠링허우'(80後)= 1976년부터 시작된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형제없이 자라난 외동아들들이 '소황제'다.

원칙적으로 중국에서는 여자가 소수민족인 경우는 2명, 그 밖에 경우에는 모두 아이를 1명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대물림 등의 문제가 생기면서 첫째 아이가 딸인 경우에는 아이를 한번 더 낳을 수 있도록 사실상 허용했다. 남아선호사상의 영향도 컸다.

외동아들의 특권(?)으로 원하는 것은 모두 누리며 자라온 '소황제'들의 소비성향은 기성 중국인들의 검소함과는 거리가 멀다. 80년 이후 출생한 이들이라는 뜻의 '빠링허우'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풍요로움에 익숙하고 자기 표현에 적극적이다. 중국 고급 브랜드 소비시장의 주축이 바로 이들이다.



◇ 지역격차= 중국 상하이내 신도시 격인 푸둥지구의 중심가 푸둥난루(浦東南路). 폴크스바겐,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곳에 자리한 상하이 최대 백화점 빠바이빤(八佰伴) 1층에는 샤넬, 랑콤, 크리스찬 디올 등 고급 화장품 매장이 즐비하다. 화장품 하나의 가격이 상하이 직장인들의 평균 1주일치 월급에 육박하지만 중국 커리어우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 랴오둥반도, 북한 신의주와의 접경지대인 단둥(丹東). 빛바랜 군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이 자전거를 타고 압록강변을 오간다. 현직 군인이 아님에도 별달리 입을 옷들이 없어 입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옷차림도 빨간 자켓이 대부분이다. 승용차라고는 5분에 한대 지나갈 정도다.

같은 중국이지만 지역 간 소득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단둥도 그나마 도시화된 편이고 서부 내륙 농촌지역에는 1인당 소득이 500달러도 안 되는 곳이 많다. 중국 소비시장을 공략하려면 상하이, 베이징 주변과 광둥성, 푸젠성 등 도시화되고 소득이 높은 지역부터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애국주의=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응원전을 통해 확인된 것이 중국인들의 '애국주의'다. 서구에 대한 열등감없이 자란 젊은층 사이에서도 특히 '애국주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서울에서 이뤄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중국 청년들이 티베트 독립운동가들을 습격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경제적으로 중국 애국주의의 영향이 확인되는 분야가 MB플레이어와 이동디스크(USB 스토리지) 시장이다. '애국자'라는 뜻의 현지 브랜드 '아이고'(愛國者)가 중국내 MB플레이어, 이동디스크 시장에서 점유율(수량 기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초창기 성능 면에서 한국, 일본 제품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에서도 중국 청년층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해 성공을 거뒀다. 중국 소비시장 공략을 꾀하는 우리나라 업체들에게는 애국주의가 하나의 큰 '복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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