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역전드라마를 기대하며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8.08.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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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절망속에서도 '긍정의 싹'은 있어

급기야 1500선이 무너졌다.
지난달 10일과 16일 두차례 1400대로 발을 담구긴 했어도 종가기준으로는 1500선을 유지해왔던 코스피지수가 마침내 1496.91로 장을 마쳤다. 지난해 4월6일 이후 최저치로 1년4개월간의 주가 상승분이 모두 날라갔다.

특정레벨 붕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시장 분위기와 향후 전망이다.
대부분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나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증시가 추가 하락하는 쪽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젠 주가순익배율(PER)이 9배에 불과해 밸류에이션이 더 없이 매력적인 상태라든가 4분기부터 기저효과가 작용하면서 물가 상승세가 크게 둔화될 것이며 기업실적도 호전될 것이라는 긍정론조차 배척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밸류에이션 접근을 포기한 지 오래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강세장에 취해 밸류에이션에 집착했던 것이 매수콜을 빨리 접지 못한 패착이었다"고 실토했다.



유동성 위기라면 밸류에이션이 결국 힘을 받겠지만 금융시스템 위기 상황이라면 밸류에이션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이론이라는 입장이다.

코스피증시 붕괴에 동감하고 있는 센터장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해외증시, 국내증시, 그리고 국내경제상황 모두 증시에 최악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서프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미국 부동산 및 증시 하락이 금융 및 유동성 위기로 치닫고 소비자의 소비여력 감소에 따라 기업실적까지 악화되면서 글로벌 경기가 침체국면에 빠질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상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국내증시는 외국인의 주식순매도 행진과 기관 및 개인의 매수여력 부재라는 수급문제를 안고 있는데 주가가 단계적인 하락세를 지속하게 되면 투자심리가 와해되고 환매가 일어나는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여기에 건설사 PF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금융 경색이 일어나고 환율과 금리 상승세가 복합되면서 부동산가격마저 추락하는 등 일대 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이제 주가가 떠도 베어마켓 랠리라는 관점이 바뀌지 않을 정도가 됐기 때문에 '주가반등=매도기회'라는 철칙이 생긴 셈이다.
지난 3월 1537까지 떨어졌던 지수가 1900선까지 오른 것이 베어마켓 랠리임이 확인됐기 때문에 사상최고치(2085)가 돌파되기 전에는 증시 분위기가 강세로 바뀌긴 틀린 일이다.

심리에 좌우되고 꿈을 먹고 사는 증시가 이처럼 냉혹한 현실과 부정적인 인식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낙관론을 거론하는 것은 이단 또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허황에 불과하다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하긴 2085까지 오르면서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었다면 거품이 다 빠지고 역버블이 생길 때까지 하락추세가 진행되는 것이 금융시장의 당연한 흐름이다.
펀드런이 나오고 투매가 투매를 불러내면서 주가가 바닥을 치는 시점과 레벨이 언제인지 섣불리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공식적인 멘트는 다소 부드럽게 하지만 실제는 '대공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쏠림이 생기면 반작용을 보이는 게 시장의 생리다. 1500선 붕괴가 거품제거의 완성이었고 이제부터 실질적인 주가하락 단계로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증시가 아무 저항도 없이 무한정 떨어지는 쪽으로 시각을 고정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관론의 끝자락을 잡는 것처럼 보인다.

이날 증시 급락세 속에서도 몇가지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가 7일만에, 현대중공업 (198,300원 ▲7,300 +3.82%)이 5일만에 상승반전했다. 현대모비스 (223,500원 ▲500 +0.22%)는 3일 연속 상승세를 지속했다.
물론 지주사 전환을 결정하는 주총을 하루 앞두고 국민은행 (0원 %)이 6% 넘게 추락하고 LG화학 (316,500원 ▼3,000 -0.94%)이 꼬리를 내렸으며 현대건설 (30,950원 ▼200 -0.64%), GS건설 (19,160원 ▲80 +0.42%) 등 건설업종의 하락세가 지속되는 등 하락종목(640개)이 상승종목(188개)의 3.5배나 됐다.

지수선물시장에서 미결제약정은 12만3553계약으로 연일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이틀째 선물 순매수 규모보다 5배나 많은 미결제약정 증가는 시장에 신규 매수세력과 매도세력이 크게 부딪히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수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미결제약정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지수하락압력이 크다고 보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사상최대치의 미결제약정 증가 또한 버블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원상필 동양증권 연구원은 "선물 미결제로만 본다면 시장에 큰 충격파가 닥칠 것"이라면서 "주가가 진짜 바닥을 치든지 진짜로 무너지든지 결판이 날 시점"이라고 말했다.

비록 1500선이 무너졌지만 승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달 11일 쿼드러플위칭데이에서의 종가를 봐야 승패를 선언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해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낸 한국 야구 대표팀처럼 증시에서도 전율이 오싹할 정도의 대역전극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포기와 체념에 빠진 센터장이나 운용본부장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 입장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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