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짜리까지 챙긴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8.09.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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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자영업자 체감경기

10년째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정근호(58) 씨는 최근 경기가 나쁘다는 말을 실감한다. 장거리 택시 이용객이 예년만 못한데다 간단하게 술 한잔 마시고 퇴근하는 직장인 손님도 대리운전에게 빼앗기면서 수입이 눈에 띄게 줄은 것. 늦은 밤 시간에 어렵사리 태운 승객이 요금을 거부하는 날이면 진이 빠지기 일쑤다.

야박한 경기를 절감하는 것은 그가 요금을 정산할 때다. 예전 같으면 동전이나 몇천 원 단위는 '껌이라도 사시라'며 안 받는 승객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50원 단위까지 요구하는 승객도 간혹 만난다. 항상 ‘조금 덜 받고 말지’라고 생각하고 요금기의 금액보다 적게 받으려고 하지만 깐깐하게 잔돈을 확인하고 나서야 하차하는 승객을 보면 세상이 각박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 씨가 지난해 한달 기준으로 승객들에게 받은 봉사료(팁)는 대략 7만 원선. 하루에 3000원 이상은 요금액 외의 푼돈을 벌어들인다. 정 씨는 매일 식사 후 담배와 자판기 커피를 사는데 이 돈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으로 정씨가 얻은 봉사료는 3만 원에도 못 미쳤다.

정 씨는 "예전 같으면 밤늦게 술 취한 승객이 잔돈이 몇 천 원 단위면 '담뱃값이나 하라’며 놓고들 갔는데, 요즘엔 평소보다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적게 주고 내리는 경우가 더 많다"면서 "요금 가지고 실랑이를 할까봐 술 마신 승객은 기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사식당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도 정 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택시회사에서 일하는 홍준복(39) 씨는 "한 여성 손님을 태웠는데 10원짜리까지 요구하더라"라면서 "담뱃값은 커녕 매일 입금액도 맞추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정확한 택시요금을 정산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한 택시의 이용도 늘었다. 택시를 탈 때는 항상 신용카드로 결제한다는 회사원 고수현(28) 씨는 “예전에는 현금이 없는 경우에만 카드택시를 찾았지만 요즘에는 카드택시가 많아 자주 애용한다”면서 “카드 사용을 통해 연말에 환급받을 수 있어 좋고, 10원짜리까지 정확하게 정산해서 좋고, 카드 기록이 남아 밤에도 현금만 받는 택시보다 안전하다”고 예찬론을 폈다.

6월 말 KB카드가 브랜드택시 결제 서비스를 시작함에 따라 서울에서 모든 신용카드의 사용이 가능하다. 서울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한 브랜드 택시는 2만6544대로 전체 택시의 36.5%에 이르며 하루 평균 카드결제 금액은 2억2600만원으로 전체 금액의 8.6%를 차지하고 있다.


10원짜리까지 챙긴다


◆ 동전 사용 늘고, 소액결제 늘고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하는 김기용(51·가명) 씨는 지난달부터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고 말한다. 예전보다 동전의 사용량이 늘었다는 것. 학생뿐 아니라 직장인 사이에서도 동전꾸러미를 들고 와서 계산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이면 그는 하루 장사를 위해 은행에서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하지만 최근에는 그럴 일이 줄어들었다. 마트를 찾는 손님들의 동전 사용량이 많다보니 동전을 내주기보다는 쌓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액도 카드로 사용하는 손님이 많아져 동전을 거슬러 줄 일이 더더욱 줄어들었다. 실제로 비씨카드가 자사 회원의 월별 결제내용을 살펴본 결과 소액결제 이용건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카드 사용자 다섯명 가운데 한명은 1만 원 미만의 결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자영업자 소액 결제 여전히 난색

7월부터 5000원 미만의 소액결제에도 현금영수증이 발급되기 시작했지만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여전히 소득노출을 이유로 현금영수증 발급이나 카드결제를 꺼리고 있다.

정부가 세수를 확대하고 공정한 세금부과를 위해 소액의 금전거래까지 현금영수증 발급을 허용했지만 정작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소액으로 발급된 현금영수증 쏠림현상은 국세청의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국세청에 따르면 7월 전체 현금영수증 발행건수 가운데 5000원 미만의 발행건수가 43.5%를 차지했다. 그만큼 현금영수증 발급에 푼돈에 몰렸다는 증거다.

한 세무사무소 관계자는 "근로소득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은 소득 노출을 꺼린다”며 “특히 소득신고액에 따라 소득세의 비율이 8~35%로 차등 적용되기 때문에 적은 금액이라도 노출이 확대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가가치세 부분도 소득액의 노출로 인해 자영업자에게는 무거운 짐이다. 소득신고액 기준 연간 4800만 원 미만인 경우 간이과세자로 분류돼지만 이상이면 일반과세자로 분류된다.

현금영수증으로 인한 세원노출을 확대하기 위해 세무당국은 일반 가맹점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 발행금액의 1%, 간이과세자 및 음식ㆍ숙박업종은 현금영수증 발행금액의 2%까지 세액공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반면 근로소득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카드 사용액이 총 급여의 20%를 넘을 경우 초과분에 한해 20%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근로소득자는 ‘티끌모아 태산’의 심정으로 ‘소득공제 마일리지’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

◆ 카드ㆍ현금영수증, 자영업자 영향 없어

편의점이야 보편화 됐지만 소규모 마트에서는 5000원 미만의 카드결제나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국세청은 이 같은 행위에 대해 전부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액 카드 결제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소액결제를 거부하는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마진이 남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카드 사용에 대한 수수료가 일정하기 때문에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100만원이나 1000원이나 똑같은 비율로 수수료를 지급하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2500원짜리 담배 한갑을 판매했을 때와 담배 한보루(10갑)을 판매했을 때 가맹점의 수익률은 같은 셈이다. 100갑을 구입하더라도 담배 1갑당 수익은 똑같다. 10만원짜리 선물세트를 판매하나 100원짜리 사탕을 판매하나 카드수수료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반면 현금영수증은 상황이 다르다. 어떤 물건을 판매하건 똑같이 40원의 승인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소액결제에 대해 부담스러운 부분이 여기에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 5000원 미만의 현금영수증 발급부분에 대해 가맹점에 건당 20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따라서 가맹점 입장에서는 카드사용이나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가맹점이 소득노출을 꺼리기 때문이지 실제 이들이 카드나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이유로 대는 '마진'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오히려 5000원 이상의 현금영수증은 5000만 원 한도 내에서 업종에 따라 1~2%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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