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칠까 두려운 '父子백수'

머니투데이 송복규 기자 2008.08.19 10:10
글자크기

[2008 백수 리포트-2]세대없는 실업

"매일 오전 6시쯤 집을 나섭니다. 조금 이르긴 한데 오전 7시에 아침식사하시는 아버지랑 안 마주치려면 일찍 나갈 수밖에 없어요. 작년까지만해도 괜찮았는데 올들어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영 서먹하네요. 제가 빨리 고시에 합격해야 자연스럽게 해결될텐데…."

수도권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장영민(가명·30)씨는 행정고시 준비생 2년차다. 지난 2006년2월 졸업과 동시에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지만 6개월만에 관뒀다. 업무량은 많은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다.



졸업 전 30여개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다 모두 낙방한 경험이 있는 그는 사표 제출후 바로 고시에 뛰어들었다. 대학교 다닐때부터 시험을 준비한 사람들보다는 늦었지만 더 이상 명문대 졸업생들과의 대기업 취업 경쟁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장씨의 아버지(55)는 한 제조업체를 다니다 지난해 2월 회사를 관두고 1년6개월째 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장씨 아버지는 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십여개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재취업에 실패했다.



마주칠까 두려운 '父子백수'


장씨네는 가장과 자녀 모두 직업이 없는 이른바 '부자 백수' 가정이다. 지난해에는 장씨 아버지가 받은 퇴직금으로 생활했다. 지금은 장씨의 어머니(52)가 설렁탕 집에서 일해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린다.

장씨 어머니의 월급은 130만원. 3인 가족 생활비로 늘 빠듯하지만 그나마 장씨의 어머니가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해 낮에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20만원 정도 더 받는다. 모자란 생활비는 남아 있는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충당한다.

장씨는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강사를 도와주고 대신 월 30만원 남짓한 학원비를 면제받는다. 토익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도저히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 없어 교제를 구입해 집 근처 구립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한다. 아르바이트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1년이라도 빨리 고시에 합격하는게 부모님의 짐을 덜 수 있는 길인 것 같아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결혼한 누나(32)가 보내주는 20만원이 장씨의 한달 용돈. 이 돈으론 교통비와 식비도 부족하지만 쪼개고 또 쪼개서 쓴다. 아침과 점심은 김밥·라면 등으로 대충 때우고 저녁은 집에서 해결한다. 저녁 역시 아버지의 식사시간을 피해 혼자서 먹는다.

장씨의 아버지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 그는 회사를 관둔 직후 새 직장을 알아본다며 매일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재취업에 번번이 실패하자 요즘은 가족들 앞에서 취업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가끔 창업박람회를 찾아 정보를 수집하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아 포기하고 만다.

장씨는 내년을 고시 합격 마지노선으로 잡고 총력을 쏟고 있지만 실패했을 때 대비책은 세우지 못했다. 1∼2년 후에도 본인과 아버지 모두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버지의 퇴직금이 바닥을 드러내면 오랜 기간 부어온 저축과 보험을 해지해야 한다. 부모님이 결혼한지 20년만에 어렵게 장만한 집을 내놓고 전셋집을 얻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제발 고시에 합격하길 바랄 뿐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