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한국 경제기적을 이끈 기업들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2008.08.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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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목·쌀가게에서 최첨단 글로벌 기업으로

1948년 건국 당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6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경제통계 작성이 시작된 1953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3억 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GDP는 9699억 달러로 무려 746배 늘어났다.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에서 2만45달러로 299배 증가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츈(Fortune)이 발표하는 500대 기업 가운데 2008년 한국은 모두 15개 기업을 올렸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폐허에서 일궈낸 한국 경제의 성장을 세계인들은 '기적'이라고 불렀다.

◇기업가 정신, 기적의 씨앗을 뿌리다= 대한민국 경제 기적의 과정에는 기업과 기업인, 그리고 그들의 기업가 정신이 있었다. 국가 주도의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피땀이 외면 받았고 재벌의 폐혜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지만 기업가들의 도전정신은 경제 발전에 큰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기업의 역사는 1896년 서울 배오개 고개에서 옷감 등을 내다팔던 박승직 상점(두산그룹의 모태)에서 시작된다. 구인회 상점(1931년, LG그룹 모태), 삼성상회(1938년, 삼성그룹 모태), 현대토건사(1947년, 현대그룹 모태), 선경직물(1953년,SK그룹 모태) 등이 잇따라 태동했다.

쌀가게, 정미소, 식료품, 양조장, 포목상 등에서 출발해 자본을 축적한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제분, 제당, 방직' 등 소위 '삼백(三白) 산업'으로 영역을 확대했지만 원조경제 상황에서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1958년 부산에 문을 연 금성사 공장 모습.▲1958년 부산에 문을 연 금성사 공장 모습.


◇라디오에서 반도체까지..전자산업의 발전= 50년대에 대한중공업공사(현대제철 인천공장 전신), 동국제강과 극동철강(옛 한보철강 전신)이 설립되면서 한국 철강산업이 태동했지만 대한민국 기업들의 활약이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들어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2007년 기준 국내 1000대 기업 중 50개가 올해 60세를 넘었지만 대한민국 경제를 맨 앞에서 이끌어 온 전자, 조선, 철강, 조선, 자동차 산업은 60년대 이후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급속히 성장했다.

50년대가 저물어가던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설립됐다. 구인회 락희산업(현 LG화학) 회장은 1957년 “우리가 언제까지 미제 PX물건만 사 쓰고 라디오 하나 못 만들어 되겠냐”며 사업 검토를 지시했고 1년후 1000만원의 자본금으로 LG전자를 설립했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국내에 탄생한 것이다. LG전자는 바로 1년후인 1959년 11월 한국 전자산업의 태동이라 불리는 국산 라디오 ‘A-501’을 출시했고 62년 11월 국산 라디오 62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LG전자는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 창업 이듬해인 59년 5000만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1조원으로 늘었고 1962년 5만 달러 상당이던 수출액은 지난해 183억 달러로 증가했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 모습.▲▲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 모습.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전자산업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가 1969년에 우리 산업사에 이름을 드러낸다. 1970년 흑백TV 시생산을 시작한 삼성전자는 지금 세계 1위의 TV 제조회사로 발전했다. 1974년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 들어 지금은 전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다. 이밖에 TFT-LCD에서도 세계 1위 등 삼성전자가 세계 1위 타이틀을 보유한 제품만 11개에 이른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수출액은 570억 달러였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가 한해 납부하는 법인세만 1조원이 넘는다. 2001년부터 2002년 한해를 제외하고 매년 1조원이 넘는 세금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라는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 기준으로 168억5000만 달러(세계 21위)에 달한다.


◇조선·자동차·철강, 효자 산업들의 성장= 7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또 다른 효자 산업인 조선업이 태동했다. 조선업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에서 정부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면서 본격화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사진 한장을 가지고 현대중공업을 시작했고 삼성그룹은 1974년 삼성중공업을 세우고 1980년부터 선박 수출을 시작했다. 대우그룹은 1978년 대한조선공사가 짓고 있던 거제도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지금의 대우조선해양으로 키웠다.

이렇게 시작된 조선산업은 지난 2000년 일본을 추월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국가별 건조량은 물론 수주량에서 1위를 뺏기지 않는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으로 발전했다. 조선업은 지난해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 기기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의 첫 선박인 '애틀란틱 배런' 건조 모습.▲현대중공업의 첫 선박인 '애틀란틱 배런' 건조 모습.
자동차산업도 70년대에 본격화됐다. 1960년대 중반까지 외국 자동차를 조립하던 수준이던 국내 자동차산업은 1974년 현대가 최초의 국산차 ‘포니’를 내놓으며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생산대수 기준으로 지난해 국내외에서 409만 대를 생산해 일본,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5위다.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 규모도 지난해 수입차를 포함 127만2000대로 전 세계 13번째 시장이 됐다. 지난 76년 7월 현대차가 포니 5대를 수출하면서 시작된 자동차 수출은 지난 한 해 동안 284만7138대로 급증했다. 수출대수 기준으로 세계 4위다. 수출금액도 지난 62년 8000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치인 497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우리나라 총 수출의 13% 정도에 달하는 규모다.

50년대 태동한 철강산업은 1973년 포스코가 생산을 시작하면서 질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쇳물을 녹여 각종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일관제철 체제를 갖춘 포스코는 자동차 조선 전자 등 국내 주요 산업들이 성장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1973년 416억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20조원을 넘어섰고 103만톤이던 연간 조강생산량은 3300만톤으로 늘어 세계 2위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다시 한번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기업들에게 다시 한번 '기업가 정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경제 개발 초기에 보여줬던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건국 60년을 넘어서는 오늘, 우리 기업들의 도전정신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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