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금메달은 누가 딸까?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이정흔 기자 2008.08.2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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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올림픽과 기업

마케팅 금메달은 누가 딸까?


지난 10일 오전 11시30분 베이징 워터큐브에서 펼쳐진 수영 남자 400m 자유형 결승전. TV를 통해 경기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박태환 선수의 몸짓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숨을 죽인다.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치고나온 박태환 선수를 향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의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태환이형 잘했어!” “태환이 만세!” “자랑스럽다 박태환!” 등의 응원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박태환 선수의 공식 후원을 맡고 있는 SK텔레콤 (51,600원 ▲100 +0.19%)의 ‘생각대로 T’ 캠페인 중 하나다.



◆ 박태환 효과, 대박이네

마케팅 금메달은 누가 딸까?
SKT는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 획득 확률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판단, 올림픽 개막 전에 ‘생각대로 T - 금메달 편’을 미리 제작했다.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 획득 직후 연이어 방영된 SKT 금메달 광고의 순간 시청률은 무려 47%. SKT는 이 광고 한편으로 명실상부한 이번 올림픽 마케팅 최고의 승자로 떠올랐다. 이 광고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의 효과만 해도 10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평가도 나온다. 혹시 모를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한 덕에 그 누구보다 ‘박태환 효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재호 SKT 스포츠마케팅팀 매니저는 “최근에는 국민들도 박태환 하면 '생각대로 T'를 떠올리는 등 광고효과가 굉장히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매니저는 “박태환 선수는 SKT의 광고모델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공식 후원을 받고 있는 선수"라며 "그가 등장하는 광고로 얼마나 많은 효과를 거두느냐 보다는 앞으로 선수로서 활약하는 데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박태환 선수의 활동 내용을 조율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한 박태환 선수가 현재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는 SKT를 포함해 모두 네편. 김연아 선수와 함께 박태환 선수를 모델로 ‘여름 소년, 겨울 소녀’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국민은행과 박태환의 바다 속 수영 모습을 담고 있는 롯데칠성의 블루마린, 그리고 윤은혜와 박태환 선수를 모델로 하고 있는 베이직하우스 광고가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매출 증가나 이미지 제고 면에서 박태환 선수를 통한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국민은행은 올림픽 개막 이후 김연아 선수가 박태환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응원하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올림픽 폐막 무렵에는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콘셉트의 새로운 광고를 내보낼 예정이다.

김진영 국민은행 (0원 %) 홍보팀 차장은 “단지 금메달 은메달이라는 성과보다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당당한 모습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국민은행이 지향하는 젊고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투자 비용 대비 10배 이상의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칠성 (128,700원 ▲500 +0.39%)의 블루마린 역시 박태환 효과 덕분에 올림픽 개막 이후 전월대비 40~50%정도 매출이 증가했다.

성기승 롯데칠성 홍보팀장은 “현재 롯데칠성 홈페이지에서 박태환 선수의 사인이 담긴 수영모자와 블루마린 등을 선물하는 등 승리기원 이벤트를 진행하는 중”이라며 “올림픽 이후에도 박태환 선수의 팬 사인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환 선수를 내세워 홍보 효과를 노리는 곳은 비단 기업들뿐만이 아니다. 그의 모교인 단국대학교 역시 현수막을 내걸고 박태환 선수의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단국대는 박태환의 경기 때마다 죽전캠퍼스 혜당관 등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모여 박태환을 응원, 많은 취재진의 눈길을 모았다. 단국대학교 측은 최근 캠퍼스 이전과 관련해 가라앉은 학교의 위상이 이번 기회에 다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현대ㆍ기아차그룹 양궁으로 희색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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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째 한국 양궁을 지원하고 있는 현대ㆍ기아자동차 그룹도 남ㆍ녀 양궁이 최고의성적을 올리자 웃음꽃이 만연하다. 주현정ㆍ박성현ㆍ윤옥희로 이뤄진 한국 여자 양궁팀은 단체전이 처음 실시된 1988년 24회 서울올림픽 이후 단 한번도 세계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6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주현정 선수가 소속된 현대모비스는 그야말로 기쁨 두배다.

현대ㆍ기아차 (126,300원 ▲700 +0.56%)그룹은 중국 주재원을 포함해 9000여명의 양궁응원단을 결성하는 한편, 입장권 확보와 전세버스, 응원복 등을 제공하며 응원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몽구 회장 일가의 양궁 사랑은 고 정주영 회장이 1982년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정몽구 회장은 서울올림픽 유치 이후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네번에 걸쳐 대한양궁협회장을 역임하고 이후에는 명예회장으로 양궁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가의 양궁사랑 대물림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도 이어졌다. 정의선 사장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대한양궁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양궁의 수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베이징 현지에서 양궁 응원을 주도하고 있는 정 사장은 여자 양궁이 금메달을 획득하자 시상대에서 직접 화환을 전달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양궁이 세계무대에서 당당한 위용을 과시함에 따라 현대ㆍ기아차그룹도 세계시장에서 양궁을 통한 마케팅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KTㆍ한화, 진종오 효과에 콧노래

남자사격과 여자하키를 지원하고 있는 KT (36,350원 ▼200 -0.55%)도 진종오 선수의 연이은 메달소식에 함박꽃이다. 50m 공기권총에 출전한 진종오 선수는 지난 아테네 대회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눈앞의 금을 놓친 아픔이 있다. 이번에도 마지막 사격에서 아슬아슬한 경합을 벌이다가 금메달을 확정하자 KT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중수 KT사장은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극적인 순간을 함께 나눴다.

갤러리아 사격단을 운영하고 있는 한화그룹도 사격에 관심이 집중되자 그룹 이미지 를 높이는 호재라며 반기고 있다. 한화 (29,050원 ▲1,200 +4.31%)그룹은 지난 2002년부터 김정 한화갤러리아 상근고문이 대한사격연맹 회장으로 있는 동안 50억원을 사격에 지원했다.

KT는 진종오 선수를 비롯한 남자사격과 여자하키팀의 자사 직원이 메달을 획득할 경우 ‘한직급 특진’이라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마케팅 금메달은 누가 딸까?
KT가 금메달 획득 시 1억원을, 은메달과 동메달은 각각 3000만원과 2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한 만큼 진종오 선수는 5급 진급과 동시에 1억3000만원의 포상금을 예약해 놓았다.

한편 박태환 붐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SKT와 광고효과에서 비교되는 분위기에 대해 KT는 심기가 불편한 모습이다. KT 관계자는 “유명 선수를 자사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기업과 달리 KT는 사회환원 차원에서 비인기종목에 꾸준한 투자를 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 종목 지원 안했어도 덩달아 특수

기업들이 경기단체나 개인 후원을 통해 지원하는 돈은 연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별도의 홍보비용 없이 올림픽 특수를 누리는 수혜 기업도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 양궁이 신기에 가까운 기록을 내자 전 세계 양궁인에게 널리 알려진 국산 브랜드 ‘SAMICK’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이 브랜드의 제조업체인 삼익스포츠는 1975년 삼익악기가 활 제조를 위해 만든 양궁사업부가 1999년 매각 과정을 거쳐 별도 법인으로 독립한 회사다.

허철원 삼익스포츠 부장은 “양궁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면서 홈페이지가 13일까지 네번이나 다운되는 등 일반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면서 “1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연간 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선수용 활 전문제조업체다.

한편 삼익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삼익악기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삼익악기는 단지 삼익스포츠가 브랜드 지명도가 높아 버리지 않는 SAMICK'이라는 로고를 통해 무임승차 효과를 누리고 있다.

수영 자유형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가 경기에 앞서 음악을 듣는 모습이 눈길을 끌면서 그가 착용한 헤드폰인 ‘피아톤’과 MP3 '아이팟 클래식‘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다.

특히 박 선수가 사용한 헤드폰인 피아톤 MS400 모델은 고가의 상품이지만 제품 구입에 대한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음향기기 전문 제조업체인 크레신은 이 모델을 당초 유럽과 북미를 겨냥해 개발했으나 박태환 효과를 통해 엄청난 광고 홍보 효과를 거둔 만큼 국내 시판도 염두에 두고 있다.

가격비교사이트인 다나와닷컴에서는 박태환 헤드폰에 관한 뉴스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이 회사의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4배 가량 늘어났다.

◆ 우울한 스포츠 공화국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이 올림픽 특수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스포츠 공화국의 명성을 쌓아온 삼성그룹은 우울한 편이다. 막대한 후원금을 내며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선정된 삼성이 올림픽 특수를 기대한 만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성화봉송 당시 한-중간 마찰로 인해 마케팅 활동에 선제동이 걸린 데다 중국 내 감정도 나빠 기업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것. 게다가 삼성 이름표를 단 대표선수들마저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삼성생명 선수들이 주축이 된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떼논 당상으로 여겼던 정지현 선수 등이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둔 것은 삼성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테니스의 등불인 이형택(삼성증권) 선수도 1회전에서 탈락했으며 프로스포츠인 삼성라이온즈와 삼성블루윙즈, 삼성비추미 소속 선수들도 타 기업 선수에 비해 활약이 미미하거나 대표팀의 패배로 인해 활약상이 묻히고 있다.

그나마 배드민턴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삼성의 후원규모에 비하면 미미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게다가 공식 후원업체인 삼성은 베이징 올림픽 명칭 사용 등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 홍보활동을 벌이는 '앰부시 마케팅' 사용 업체가 보편화 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에 따르면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앰부시 마케팅 적발 건수가 1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올림픽위원회가 향후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삼성 입장에서는 그만큼 홍보 효과를 뺏기고 난 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공산이 크다.

때마침 터진 광복절 대사면도 삼성으로서는 뼈아프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재계 선두권의 회장들이 줄줄이 사면을 받았지만 삼성의 얼굴인 이건희 전 회장은 형미확정으로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축제에 있어서 전방위적 홍보활동을 펼쳤던 삼성의 스타일을 보더라도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삼성의 노출빈도는 많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재벌가 3세의 행보도 현대ㆍ기아차그룹과 삼성그룹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양궁경기장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개막식 이후 뚜렷한 공식일정을 잡지 않다가 이튿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삼성그룹의 입장에서는 우울할 수밖에 없는 올림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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