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서…" 취업이민도 낙방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08.08.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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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백수보고서-3. 해외서 꿈찾기]취직보다 어려운 이민

 
"백수라서…" 취업이민도 낙방


"한국에서는 비전을 찾을 수가 없어요. 젊음을 밑천으로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생활 9개월째에 접어든 정동현씨(30·가명)는 한국을 떠나려 한다. 차라리 새로운 환경을 찾아나서겠다는 생각에서다.

정씨는 지난 2006년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을 졸업했다. 1년 동안 취업에 매달린 끝에 한 IT회사에 들어갔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와 어렵게 취직에는 성공했지만 삶은 나아지는 게 없었다. 밥먹듯 하는 야근에, 쥐꼬리같은 월급, 경력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이 그를 압박했다.

정씨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던 호주 생각이 간절했다. 호주는 노동조건이 좋고 각박한 일상이 아닌, 질 좋고 안정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정씨는 호주로 취업이민갈 것을 결심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뒀다. 자진해서 백수로 돌아간 것이다.

정씨는 요즘 이민중개업체들을 통해 취업이민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맞닥뜨린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무엇보다 '경력'이 필요했다. 경력이라는 것을 쌓기가 힘들어 이민을 결심했는데 정작 이민국에서도 경쟁력 있는 경력과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씨는 영어학원에도 다니고, 도서관 등에서 최적의 이민 방법을 찾느라 바쁘게 보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커져가고, 처음의 넘쳤던 자신감은 줄어들고 있다.

취업이민을 꿈꾸는 백수들이 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도 안되고, 직장을 갖더라도 여전히 팍팍한 현실이 그들로 하여금 머리를 들어 해외시장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다음카페 '백수회관'의 운영자는 "규모파악이 가능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취업이 잘 안되는 답답한 상황을 깨고자 취업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혼자의 힘으로 취업이민을 추진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취업비자이든, 전문인력비자이든 비자조건을 맞추기가 힘든데다, 언어 기술 경력 등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이 아무리 살벌한 취업 전쟁터이지만 비자조건을 맞추기보다 국내 대기업 입사가 더 쉽다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이민컨설팅업체의 상담원은 "취업이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며 "경력과 나이, 영어능력 등을 구체적으로 점수화해 평가하는 호주의 경우 최근 3년 중 2년 이상의 경력이 이민자의 기본 자격"이라고 말했다.

이 상담원은 또 "미국 취업이민의 EB-3 비자도 2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가능하고 경력이 없다면 공장 생산직이나 청소 일을 해야한다"며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백수로 지내던 이들에게 취업이민은 상당히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6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단기 해외취업활동)를 다녀온 강모씨(28·취업준비생)는 호주에서 영주권을 얻어 그곳에서 직업활동을 계속 하려던 꿈을 접었다.

그는 "상당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으면 3D 업종에서 일하기 마련이어서 오랜 백수생활에서 벗어나려는 막연한 취업이민은 언감생심에 가깝다"고 씁쓸해 했다.

강씨는 이어 "한국에서는 취업을 못하고 있지만 일하고자 하는 의욕과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프로그램을 정부차원에서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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