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곳만 민영화? 공기업 개혁의지 퇴색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8.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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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기업 외에 추가로 민영화되는 공기업이 고작 5개에 그치는 등 공기업 개혁 정도가 예상보다 크게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정부가 공개한 '1차 공기업 선진화 추진방안'에 따르면 민영화 대상 공기업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14곳까지 포함한 전체 319곳 가운데 △한국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건설관리공사 △경북관광개발공사 △뉴서울 CC 정도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과 쌍용건설 등 공적자금 투입 기업 14곳과 산은캐피탈 등 산업은행 자회사, 기업은행 자회사, 49% 지분매각을 추진 중인 인천국제공항까지 포함해 27곳을 민영화 대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산은 민영화는 이미 6월초 금융위에서 발표한 사안인데다 공적자금 투입 기업은 엄밀한 의미에서 공기업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실제 민영화 대상 공기업은 산은과 기은까지 더해도 7개에 그친다. 정부는 산은 자회사 2곳과 기은 자회사 3곳을 모은행과 별개로 계산했지만 이는 '숫자 늘리기' 성격이 짙다.

게다가 기업은행의 경우는 증시상황을 봐가면서 지분매각을 통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민영화 시기를 멀찌감치 미뤄놨다.



정부의 분류법을 적용하더라도 50~60개 기관을 민영화한다는 최초 추진안과 비교할 때 공기업 개혁의 정도는 질적·양적으로 크게 떨어진다. 대부분의 기관은 일부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거나 자체적으로 기능을 조정하는 수준에 그친다.

민영화 대상 기관도 파급력이 큰 대형 기관은 대부분 제외됐고, 상대적으로 기관의 힘이 미약하고 노조 반발이 적은 '만만한' 기관만 포함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통폐합 대상 중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합의 경우도 지자체의 반발을 의식해 진주(주공)와 전주(토공)으로 선 이전한뒤 후 통합키로 해 통합의 시너지효과가 반감됐다.


지방혁신도시 이전 예정 시기가 2011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폐합 자체가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통폐합 건은 2차 발표로 미뤄졌다.

이 같은 정부의 공기업 개혁 의지 퇴색은 이미 예고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과정에서 "민영화 후 공공요금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민영화 괴담'이 유포되자 정부는 전기·가스·수도·건강보험 등 4대 부문은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과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등 정작 대대적인 개혁작업이 필요한 '공룡' 기관은 공기업 개혁의 바람을 피해갈 수 있었다.

또 쇠고기 파동의 후폭풍으로 공기업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경질되면서 공기업 개혁의 추진력은 급속하게 힘을 잃었다.

이후 청와대가 직접 공기업 개혁 작업을 챙기는게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 소관 부처별로 개혁을 맡도록 해 공기업 개혁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도 부실해졌다.

현재는 기획재정부 주도로 공기업선진화특위에서 공기업 개혁 작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부처나 해당기관에서 느끼는 개혁 부담감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것보다 훨씬 덜하다.

이에 따라 현 정부가 과거 정권의 공기업 개혁 실패 사례를 답습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정권 초기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다 노동계의 강한 저항에 직면하자 포기했고 오히려 5년 동안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공기업의 덩치만 키워놨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 때는 8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67개 자회사를 매각하는 성과를 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관된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여론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개혁의 긴장도가 현저하게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개혁을 진두지휘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부 스스로 개혁 동력을 떨어뜨린 측면도 크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최초 구상안보다는 개혁의 수준과 대상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정국 여건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면서 "확정된 개혁 프로그램은 차질없이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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