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너무 많은 코스닥시장

더벨 정호창 기자 2008.08.0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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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수준미달 기업, M&A 브로커 판 쳐… 시장 신뢰 실추

이 기사는 08월07일(08:0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코스닥기업 사장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요?"



최근 코스닥 업체 A사와의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벤처기업 B사 대표의 푸념이다.

이 벤처기업은 최근 코스닥 업체 C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소송 내용은 B사가 A사와 합병계약을 체결하기 전 자신들과 먼저 투자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므로 두 회사의 합병계약은 무효라는 것.



얼핏 보면 B사가 C사와 미리 계약을 맺어놓고도 뒤늦게 A사가 나타나자 양사를 저울질하다가 C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A사와 손잡은 비양심적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B사 대표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C사로부터 일정 금액을 투자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사실이나, 말그대로 양해각서 수준이고 구체적인 투자내용이나 계획 등을 담은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아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양해각서의 내용을 C사가 먼저 어겨 정식 항의를 했고 이로써 MOU의 효력이 자연스레 상실됐는데 이제와서 어깃장을 놓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했다.


B사는 올들어 사업 확장을 계획하면서 투자금 조달을 위해선 비상장기업보다 상장기업이 유리하다고 판단, 우회상장을 검토하게 됐다. 그리고 때마침 C사의 대리인을 자처한 모M&A 부티크 관계자가 찾아왔다.

부티크 관계자는 C사가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유상증자에 성공하면 그 중 일부를 투자하고 싶다는 제안을 내놨다.

결국 두 회사는 "C사의 유상증자 성공으로 투자재원이 마련되면 B사에 일정 금액의 지분투자를 한다"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단, 구체적인 투자조건과 투자계획은 추후 양사의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MOU체결 후 B사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C사가 유상증자 공시를 하면서 금감원에 증자자금의 사용용도를 B사에 대한 투자로 밝히고 B사의 실명과 회사정보를 자세하게 공개한 것.

구체적 투자조건과 계획에 대해 전혀 협의된 내용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공시를 강행한 것이다. B사는 C사에 항의했으나 정정공시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 금감원에 이의를 제기해 공시를 강제 정정했다.

B사 대표는 "나중에 알고보니 C사는 재무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어 직원들 급여는 커녕 회사의 공과금도 납부할 능력이 없었다"며 "자금조달 루트가 막혀 유상증자만이 유일한 길이었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우리 회사를 이용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교수를 하며 연구하던 기술을 상용화시키고 싶어 회사를 설립하다보니 경험이 적고 M&A관련 지식이 없어 상대회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 실수"라고 덧붙였다.

결국 C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그는 M&A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아 A사와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또 "최근 우리가 법적 맞대응을 선언한 후 C사에서는 소송을 취하할테니 일부 지분에 대해서라도 투자를 할 수 있게 허락해 유상증자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읍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C사는 유상증자 목적을 포장해 투자자들의 눈을 속이려 한 셈이다.

C사를 그의 주장처럼 무조건 문제있는 기업으로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문제는 코스닥 시장에 이런 식의 의심가는 기업이나 실제 큰 결함이 있는 기업들이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코스닥 시장에서는 '자고나면 송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분쟁이 잦다"며 "그만큼 부적격 기업과 문제있는 CEO, 투기꾼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시장의 절반은 사기꾼과 작전세력, M&A꾼들이 주무르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시장의 신뢰가 낮다"며 "이런 사람들과 기업들로 인해 코스닥 시장이 제대로 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도 "내 손을 거쳐간 코스닥 업체가 10여개가 넘는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M&A브로커를 만난 경험이 있다. 그 업체들은 모두 많은 투자 피해자들을 양산한 채상장이 폐지됐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개울물을 흐린다'는 속담이 있다. 한마리 미꾸라지도 그런데, 수십마리의 미꾸라지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코스닥 시장 진입과 퇴출 기준을 강화하라는요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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