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안 쏟아지는데 세제당국은 "…"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8.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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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경제- 카스테라]

옛 재정경제부 시절부터 기획재정부를 3년 가까이 출입하다보니 굳이 경력을 묻지 않아도 금융정책국(현 금융위원회 소속, 옛 이재국) 출신과 세제실 출신은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식사 자리에서 만나도 금정국 출신들은 금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금융시장의 위험이 주된 관심사다. 반면 세제실 출신들은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밥 먹을 때는 세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세제실의 '불문율'이다.



재정부 세제실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하다. "세제실은 입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 매년 8월말 '세제개편안'이 발표되기 직전에는 아예 입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한번 입을 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칫 설익은 정책이 새어나갈 수 있어서다. 세금만큼 민감하고 파급범위가 큰 분야가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 같은 세제실의 '보안 민감증'은 같은 공무원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허용석 관세청장은 "옛날에는 세제개편안의 내용 중 일부가 신문에 나면 아예 그 내용을 빼버렸다"고 했다.



최근 여당에서 중구난방으로 감세안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세제실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는 법안들이 발의돼도 세제실은 "종부세는 부동산시장이 안정된 뒤에 완화를 검토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뇌고 있다.

지난 4일에는 한나라당이 라면 등 생활필수품의 부가가치세(10%)를 서민층에 환급하겠다는 정책을 내놨지만 세제실은 "어떤 얘기인지 살펴보겠다"고만 했다. 말많은 상속세 인하 방안에 대해서도 세제실은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이 없다"고만 할 뿐이다.

세제당국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다보니 납세자인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치권이 내놓은 감세안들이 실제 시행이 될지, 안 될지 종잡을 수가 없다. 특히 종부세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동안 부동산시장에서는 종부세 완화에 대한 기대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조세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등과 달리 의원들이 충분히 전문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이 감세를 주도할 경우 조세체계를 왜곡하고 장기세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하다"고 했다.

또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는 곳이긴 하지만, 세제만큼은 전문화된 세제당국에서 장기적인 기조에 따라 분명한 정책을 제시하고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 중구난방 감세안이 쏟아지는 지금, 세제실이 조금은 입을 열어야 할 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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