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생명보험 외길..국민기업 우뚝

머니투데이 김성희 기자 2008.08.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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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산업 개척 교보생명 창립 50주년 <上>

교보생명이 7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교보생명은 대한교육보험으로 출발해 자산규모 50조원을 눈앞에 둔 대형보험사로 성장했고 지난 50년 동안 한국 보험산업을 이끌어왔다. 50년을 지나온 교보생명은 이제 100년 기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성장 비결과 걸어온 발자취를 조명해본다.

◇외부 지원 없이 성장



↑현재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사옥↑현재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사옥


교보생명의 창립 첫해 자산은 2200만원이었다. 50년 후인 올 3월 현재 자산은 46조1664억원으로 50조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7회계연도 매출은 12조3000억원. 단일기업으로 국내 20위 규모다. 계약자는 530만명. 보유계약은 1000만건이 넘는 '국민기업'이 됐다.



그동안 교보생명이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은 무려 115조원에 이른다. 현재 보유계약 기준으로 앞으로 지급하기로 약속된 보험금(주계약 기준)만도 244조원에 달한다. 국민 1인당 500만원을 보장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주목할만한 점은 창업 이후 50년간 주인이 바뀌지 않고 외부지원 없이 독자 성장해왔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회사로는 유일하다. 다른 생보사들과 달리 재벌그룹에 속해있지 않고 오직 생명보험 한길을 걸어오며 이같이 성장했다는 점에서 교보생명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외환위기 때도 교보생명은 다른 행보를 보였다. 당시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부실해지면서 금융권에 투입된 공적자금만도 무려 168조원에 이르렀다. 교보생명도 외환위기 여파로 2조원이 넘는 손실을 보며 기업의 생존을 걱정할 만큼 위기를 겪었지만 단 한푼의 공적자금도 받지 않고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헤쳐 나왔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경영혁신에 박차를 가해 경영효율, 이익창출 능력 등을 한층 강화해 더욱 강한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실제로 90년대 400억~500억원 수준이던 이익규모는 2002년 이후 매년 3000억원 이상을 실현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50년 성장 비결

↑1958년 대한교육보험으로 출범 당시 종로 사옥.↑1958년 대한교육보험으로 출범 당시 종로 사옥.
이처럼 교보생명이 한결같이 성장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신창재 회장은 "고객과 시장의 환경변화에 따라 적시에 잘 대응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항상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며 끊임없는 경영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또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며 한발 앞서 시장을 이끌어왔다. 특히 외환위기를 맞아 내실을 중시하며 지난 8년간 추진해온 변화혁신은 교보생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업계에서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한 우물'을 판 회사라는 점을 꼽는다. '선택과 집중'을 잘 해온 결과라는 것. 50년간 생명보험업에 집중해 본업에 충실해왔고 핵심역량을 '좁게 높게' 쌓아올렸다.

다른 업종으로 사업을 다각화할 법도 하지만 좀처럼 본업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때 교보자동차보험을 설립, 손해보험업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생명보험업과의 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판단 아래 프랑스의 AXA에 매각하고 손보업을 접기도 했다.

이렇게 쌓아 올린 생보사로서의 전문역량은 상품개발, 리스크관리, 자산운용 등 생명보험 전 영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이 대부분 본업에 충실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보험산업을 개척하다

↑창립과 동시에 내놓은 '진학보험'. <br>
교육과 보험을 접목해 교육보험의 효시가 됐다. ↑창립과 동시에 내놓은 '진학보험'.
교육과 보험을 접목해 교육보험의 효시가 됐다.
교보생명의 반세기 발자취는 한국 보험산업 발전의 역사다. 한국전쟁의 상처로 피폐했던 1958년 8월 7일 첫 발을 내디딘 교보생명의 당시 회사명은 '대한교육보험'이었다. 다른 생명보험사와 달리 '생명보험'이 아닌 '교육보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상호였다.

창립과 동시에 내놓은 상품은 교육보험의 효시인 '진학보험'이었다. 교육과 보험을 접목시킨 독창적인 상품으로 어느 나라에도 유래가 없었다. 교육보험은 당시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높은 교육열과 맞아떨어지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생보업계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교육보험을 발판으로 창립 9년만인 1967년 업계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교보생명에게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1984년 업계 최초 순보험료식 책임준비금 100% 적립, 1988년 업계 최초 계약자 이익배당 실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보험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업적으로 기록됐다.

또한 교보생명은 전환기마다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며 바람을 일으켰다. 기업복지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했던 1977년에는 국내 최초로 퇴직연금의 전신인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 단체보험 시장을 주도했다.

198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암보험은 보장성보험 대중화의 신호탄이었다. 이를 계기로 단기 저축성상품에 의존하던 보험업계는 점차 보장성보험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했다. 2000년대 들어 국내에 최초로 내놓은 변액보험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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