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수지가 맞아야 장사를 하지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8.08.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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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건설사 공동주택 디자인 심의 딜레마

“디자인 서울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심의를 통과치 않겠다.”

“모든 사업을 중단하고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서울시가 하반기부터 적용하는 공동주택 심의기준이 10월로 예정됨에 따라 건설사는 ‘디자인 서울’의 무언의 압박에 못이겨 디자인 개발을 진행하면서도 원가상승으에 따른 부담 등으로 인해 고심에 빠져있다.



서울시가 ‘성냥갑식 아파트’ 불허 방침을 공동주택 심의기준에 따라 시행하고 10월부터 건축심의를 통과하는 공동주택부터 우수 디자인 아파트에 대한 용적률이 10% 상향시킴에 따라 건설업계의 변화는 불가피하게 됐다. 다만 디자인 개발과 변화가 분양가 상승을 야기 시킬 수 있다는 문제도 있어 건설사 입장에서는 디자인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일단 대부분의 건설사는 지금 ‘디자인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전국 미분양 물량이 13만 가구에 이르고 자금줄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디자인 경쟁력을 갖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불황을 타계할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적체된 미분양 물량이 유동성을 막고 있는데다 원자재가 상승으로 인해 건설업계의 경기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나마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건축비 인상안을 적용하는 단품 슬라이딩제를 시행하게 됐지만 여전히 건설경기가 침체기로에 서 있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올 초 이후 본격적인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아파트라는 제품에 품질 상승 투자는 어렵게 됐다. D건설사 관계자는 “디자인 다변화에 대한 수요자의 요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상한제 적용물량에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아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디자인 프리미엄 약발 받을까?


디자인? 수지가 맞아야 장사를 하지


문제는 서울시의 디자인 특성화에 따른 프리미엄에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3종 기준 250%까지 용적률을 부여할 수 있으나 기준에 따라 실제 220~230%의 용적률을 받고 있다. 만약 민간 사업자의 건축물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로부터 우수 디자인으로 인정받게 되면 용적률을 10% 상향조정 받을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 건축업자가 누리지 못하는 용적률 기준을 디자인만 충족되면 찾아주겠다는 것”이라며 “향후 디자인 개발에 노력하지 않는 업체는 꼭 디자인 프리미엄 때문만이 아니라 심의통과가 지연되는 등 금융비용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디자인 개발 의지와는 다르게 민간건설사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건설업체는 새로운 디자인 개발비용과 적용비용을 감안할 때 10%의 용적률 상향보다는 기존에 선보인 디자인으로 설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수주물량이 이처럼 없는 상황에서 아파트의 건축설계에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이 건축물의 10% 용적률 상향으로 얻는 비용보다 크다”면서 “새로운 디자인 개발보다는 기존의 디자인대로 심의에 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시의 ‘디자인 혁명’은 민간에서 그리 끌리지 않는 ‘당근’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와 지자체가 금융보증이나 건설경기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토지구입에 따른 거품 제거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대부분 주택 사업을 하는 업체들은 디자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만큼 금융위기에 몰린 상태다”라며 “건설업체가 디자인 개발에 힘쓰기를 바란다면 정부지원책이나 금융권에 신용보증을 통해 우선 숨통을 트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자인, 일단은 경쟁력이다

상대적으로 주택분야의 비중이 낮은 일부 대형건설사들도 디자인 개발은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그나마 유동성 부족을 덜 겪고 있는 기업의 경우 서울시의 정책 방향에 따라 움직일 의향이 있어 보인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분양가가 높다고 아파트 구입을 미루고 있는 수요자들에게 ‘특별한 아파트’라는 선전문구가 과연 먹히겠는가”라며 “그러나 정부에서 공개입찰방식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그동안 개발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입찰할 경우 낙찰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디자인 개발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례로 7월29일 두산건설, 코오롱건설, 롯데건설 등이 포함된 산업은행-대우건설컨소시엄이 기존과는 다른 획기적인 디자인을 앞세워 수원 광교파워센터 PF(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산업은행-대우건설컨소시엄은 수원 화성 봉수대를 형상화한 ‘에콘힐’ 조감도를 제시해 이번 사업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축물은 네덜란드 도시디자인업체인 MVRDV사의 세계적 건축가인 위니마스가 참여했으며 2조4300억원을 들여 성곡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시설과 상업시설을 유치하게 된다.

◆수요는 있지만 경제성은...

서울시의 '디자인 서울' 의지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바로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이다. 서울시는 올 10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에 세계 디자인 거장을 초청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일부 건설사에서도 서울시의 디자인 우선주의 정책에 발맞춰, 그리고 앞으로 살아날 부동산 및 건설경기를 고려해 새로운 디자인을 자체적으로 심사하며 대비하고 있다.

K건설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참신하고 획기적인 디자인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그러나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분양되지 않으면 타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경기가 나아지면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건설사 입장에서는 디자인 개발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디자인 개발이 수요자에게 선호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 미분양 문제를 타계할 묘안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업계의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디자인 개발에 들어갈 여력이 부족한 현실이다.

결국 디자인 서울의 밑그림이 그려진 상황에서 민간건설사의 참여를 독려할 만한 묘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당장 서울시의 숙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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