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영웅' 미국…왜 흔들리나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8.07.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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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공황,악몽이냐 가까운 미래냐]<中>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 성적과 싸움에서 모두 최고인 엄석대의 카리스마가 무너지자 학급 안에는 엄청난 혼란이 나타난다. 주인공인 한병태는 엄석대를 정점으로 형성됐던 질서에 저항하다 안주하게 됐고, 오히려 엄석대가 쌓아놓은 질서가 무너지자 혼란을 겪게 된다. 이 소설은 강제된 질서, 질서 붕괴후 겪게 되는 가치관의 혼란, 질서 속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무기력함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이문열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앞세워 세계 경제의 맏형이자 질서 지킴이를 맡아 왔지만, 이제 그 카리스마가 흔들리고 있다. '영원한 질서'로 여겨졌던 미국 중심의 글로벌 시스템이 붕괴를 맞이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 경제의 호황을 이끌던 '영웅'이 왜 이렇게 약해졌을까. "미국발 글로벌 대공황이 올 것"이란 위기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그러진 영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흥청망청 소비하는 경제
미국의 연평균 저축률은 2000년 이후 거의 '0'에 가깝다. 반면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엄청나다. 200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7%로 사상 최대 수준에 도달했던 경상적자 규모는 올 1·4분기에 5% 수준으로 낮아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경상적자가 GDP 대비 5%라는 것은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력보다 추가로 5% 이상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민간 부문의 소비는 늘 1990년대말부터 늘 경제성장률을 웃돌고 있다.

저축률이 '0'에 가깝다는 것은 빌린 돈을 갚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에 대해 "채무자가 소비를 줄이지 않고 저축도 하지 않는다면, 채무자의 부도는 당연하고 달러는 위조지폐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 1980년대 이후 제조업보다는 금융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재편했다. 미국의 서비스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 수준이다. 다른 선진국들의 평균 70%대에 비해 매우 높다. 서비스 업종은 자동화가 어렵고 수출은 거의 불가능한, 전형적인 내수 산업이다.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한 채 공산품 소비를 위해 대부분의 상품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미국은 현재 자동차, 군수산업, 우주항공산업, IT(정보기술)이나 BT(생명공학) 등 첨단 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포기하고, 서비스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를 확립함에 따라 내수 소비를 끊임없이 확충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나마 자동차, IT 등에서도 다른 선진국이나 이머징마켓에 추월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달러의 남발…가중되는 위기
은 본위제 포기, 금 본위제 훼손은 로마 제국의 붕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로마의 네로황제는 식민지와의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은 함유량을 조절해 은화를 평가절하했다. 이때부터 은 함유량은 지속적으로 줄어 로마제국 경제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클라우디우스 시기에는 화폐가치의 0.02% 수준으로 떨어졌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를 타개하고자 금화를 기축통화로 삼았으나 채굴량 부족 등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로마 제국(특히 동로마 제국)은 중산층 몰락, 화폐 및 신용경제 붕괴 등을 겪으며 본격적인 몰락을 시작했다.



미국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몰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정부에서 약달러를 공식적인 정책으로 표방하고 있진 않지만, 이를 최소한 묵인 내지는 방조하는 이유는 약달러를 통해 현재 위기를 은폐하려는 의도라고 홍 센터장은 분석했다. 약달러, 낮은 금리, 감세정책 등을 통해 소비확대를 끊임없이 유지하려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를 남발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달러약세가 유가 상승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약달러 지속으로 신뢰를 잃은 투기자본이 원유 등 원자재 쪽으로 집중해 원자재 가격이 이상급등하고 있다"는 분석은 바로 이 같은 문제의 근본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곧 터질 듯한 '뇌관'…레버리지 시스템
현재 활약하고 있는 국제 투기자본은 대부분 미국에서 탄생했다. 대표적인 투기자본인 헤지펀드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기초자산(원금)보다 2~3배 많은 자금을 빌려 투자한다. 매각시에도 환매 금액의 2~3배를 매각해야 한다. 따라서 갑자기 환매가 밀어들면 국제 금융시장은 한꺼번에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IB(투자은행)들은 전 세계 금융에 레버리지형 시스템을 심은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을 각종 파생상품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내다 팔았다. 이로써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레버리지를 통한 무한수익창출에 열을 올리는 기형구조를 갖게 됐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또는 금리평준화 현상이 지속되며 엔캐리트레이드 등 레버리지 투자가 상식이 됐다. '레버리지 효과'는 파생상품, 장외파생상품 등에 적용되며, 글로벌 자본을 끝없이 증식시켰다.

현재 미국발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프라임 모기지(우량 주택담보대출)로 확산되고,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 등 유력 IB의 위기로 확대된 배경에는 바로 이 같은 무한 레버리지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홍 센터장은 "레버리지를 통한 투자확대로 위기의 글로벌화가 진행됐다"며 "미국의 주도 아래 자본투자에서 국가 장벽 및 규제를 없애는 세계화가 진행됐고, 국경없는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그만큼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동시에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미국 소비둔화, 미국 금융시스템 붕괴가 나타날 경우 쓰나미처럼 전 세계를 휩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헤지펀드의 대부격인 조지 소로스가 최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 위기는 인류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바로 이 같은 레버리지 의존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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